1.본명선언으로 변한 자신
차일전(한청 효고본부)
지금 자신을 돌이켜 보면 참말로 달라졌구나라고 생각된다. 재일 크게 달라진 계기는 한청과의 만남이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외국인등록증을 휴대하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의 본명을 알게 되었고, 불안해서 자기를 감추려했다. 왜냐하면 이름이 또 하나 있는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적이었지만 민족의식도 없었으며 가까이 있는 재일동포청년도 몰랐다. 이 이상한 상태는 나 뿐만아니라 많은 동포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한청을 알게되었고 좋은 동포, 좋은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한청에 나갔을 때 "일전"이라 부르는 데는 어색한 감이 있어 자기를 정면에서 직시하지 못했고 활동을 쉴 때도 많았다. 그러나 한번 나가면 반드시 하나씩은 성장한다. 이것이 큰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은 것, 무의식적으로 죄악감이 절로 나오는 이유, 그것은 일본사회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무척 분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다나카'라고 불리울 때마다 우울한 심정이 되어 본명을 선언하기로 했다.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친구들과 더 깊이 사귈 수 있게 되었고 떳떳하지 못한 점도 없어졌다.
또 가까이 있는 동포와 신뢰관계도 구축할 수가 있어서 정말 의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집에서도 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시야도 넓어졌다고 느껴져 재일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아직껏 많은 동포청년들이 자기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최근에는 한국 붐의 한편에서 우경화한 일본의 매스컴, 교과서문제 등 왜곡된 교육정책으로 재일동포들에게는 숨막히는 일본사회이다. 매년 1만여명의 재일동포가 일본사람으로 귀화하고 있다. 내 여동생은 "한국사람이 싫다"고 말한다.
20세된 나는 자기뿐만 아니라 60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가 모두 살기 좋은 일본, 전쟁을 정당화하는 그릇된 세상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고뇌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동지들과 힘을 합쳐 빛나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살아나갈 것이다.
2.민족적으로 산다는 것을 배워
박수혁(한청 도쿄아다치지부)
성인? 어른이 된다는 것? 나자신 성인라면 어른이 됨으로서 자기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짓부순 것이 이번의 한청 성인식이었다. 성인자에게 보내는 말속에서 선배가 "중동지역에서 자폭테러하는 청년이나 아이들, 식량난으로 성인이 되기 전에 죽어 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내 사고가 얼마나 평화마비증이었던가를 깨닫게되었다.
그런데 나는 도쿄에 올라 올 때까지 19년 동안 후쿠오카에서 살았다. 그간 재일동포와의 만남은 거의 없었고 나 이외의 재일동포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매일같이 생각하며 고민했다.
여러가지 고민과 걱정을 안고 도쿄에 올라 온 나는 인터넷 상에서 한청을 만나게 되었다. 한청이란 무엇인가. 어떤 모임인가. 매일같이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다. '민족적으로 산다' 이 생각은 바로 나의 이념과 일치한다고 느끼고 한청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성인식에서는 민족악기의 연주와 노래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동포 성인자와 함께 동포들의 축복을 받는, 이 보다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까. 강연이나 연주에 감동 받는 성인식이 어디 또 있을까.
성인을 맞이한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세부터 20세되는 한자리수가 9에서 0으로 변한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닌 10대의 9년간의 경험을 살린 새로운 출발이다. 9년간을 돌이켜 보면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20대의 자기를 형성해 나가고 싶다.
끝으로 북이 '악의 축'으로 지목 받고 북 때리기 속에서 우리들 재일은 사회적으로 차별 당하며 "자기는 재일한국인"라고 떳떳이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민족을 버린다는 것은 재일이라는 사실과, 표면상은 일본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두 가지 고통을 안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민족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세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는 재일한국인이다. 조선민족으로서 살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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