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 팔아서(?) 잡지 구독 강요하지 마세요.
김수종
오후시간 약간 졸리는 틈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수종씨, 나 대학
동기생 박현미야.”
“야! 오랜 만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해.”
“응, 감기에 편도선까지 부어서.”
20대의 꿈같은
대학시절이 지나가고, 십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의 목소리는 반가웠다. 박현미. 대학 동기생으로 재수를 해서 나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너무나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년 후쯤 버스 안에서 우연히 잠시 마주친 일이 있고는 정말 십여 년 만이었다.
오랜 만에 걸려온 전화에 동기생들의 안부며, 그 동안의 생활을 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한거야.”
“응, 사실 결혼하고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얼마 전에 H경제신문사에 취직을
했거든.”
“그래 잘 되었네. 그럼 기자.”
“아니 그냥 신문판매를 담당하는 영업직이야.”
순간 나는 ‘분명 신문구독을 권유하기 위해 어렵게 전화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만에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한데, 실은 요즘 경기도 어렵고 해서 판매가 잘 안되거든. 우리 신문사에서 나오는 경제전문 주간지를 1년
구독해 주었으면 해서.”
“응, 그래. 고민이 되는군. 나는 경제신문을 잘 보지 않고, 또한 H신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불쑥 전화해서 부탁까지 해서 미안한데, 힘들면 그냥 반년이라고 구독해 줄 수는 없니.”
“그것도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연락해 줄래.”
“그럼 미안해.”
통화를 끝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부자 집 딸로 동기생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던 현미가 잡지를 팔기위해 나에게 십여 년 만에 전화를 했지만, 별로 구독할 뜻이 없어서 거절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조금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마음이 아팠다. 귀하게 자란 현미가 무엇 때문에 판촉 전화까지 했을까?
늦은 시간까지 고민을 하다가 잠을 청했다. 이불을 뒤척이며 생각을 하다가. 아차! 현미는 졸업도 하기 전에 교육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교육청에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지난 번 버스에서도 분명 어디 교육청에 근무한다고 했었는데. 속았다? 분명 그 여자 목소리가 너무 이상했고, 잘 모르는 사람을 동기생이라고 말하기도 했었어.
그러고 보니 작년에 총동문회 명부를 새로 만들고서 총동문회 홈페이지에 동문이나 선후배를 사칭하는 사기(?)전화가 많이 온다고 했었지.
다음 날 출근을 하자마자 또 다른 동기생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야. 현미 아직도 공무원하고 있지.”
“응, 한 달 전에
만났는데. 지금도 공무원하고 있지.”
“그럼 전화번호 좀 알려줘.”
“왜. 무슨 일 있니.”
“응. 어제 이상한 전화를
받아서.”
경숙에게 어제의 일과 상황을 전부 말했다.
“너 바보구나! 자존심 강한 부자 집 딸인 현미가 그런 전화를 했을리도 만무하지만, 졸업도 하기 전에 공무원 시험 합격하여 임용된 것을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러게 나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니 생각이 나더라. 왜 동창회 잘 나가지 않으니 기억이 잘 안 나서.”
경숙과 전화를 끊고 현미에게 전화를 했다.
“현미야. 나 수종이.”
“오랜 만이다. 왠일이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런데 너 어제 나한테 전화하지
않았니.”
“아니. 무슨 소리야.”
나는 어제의 일을 설명해야 했다. 그는 너무 황당해 하는 눈치였다.
“동기생 모임에 자주 나와라. 그리고 요즘 그런 전화 많이 온다고 하더라.”
“그러게 나도 작년에 총동문회 명부가 나온 이후로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후배라고 이상한 전화가 한 번 온 적이 있었거든. 그 때도 속을 뻔 했었는데. 이번에는 친한 동기생이라고 하면서 감기로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하니 속을 수밖에.”
“그럼 잘 지내고 다음 동기회 때 보자.”
그날 밤에도 총동문회 명부를 보고 동기생인 척 하면서 잡지구독을 강요하는 이상한 친구(?)를 생각하니 잠을 자다가도 화가 난다.
제발, 신문이나 잡지, 물품 판매를 위해서 친구이름 팔지 마세요.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용규 선생의 야외조각공원과 갤러리 쉐브아(www.갤러리쉐브아.com) 2 (0) | 2006.10.03 |
---|---|
류용규 선생의 야외조각공원과 갤러리 쉐브아(www.갤러리쉐브아.com) (0) | 2006.10.03 |
대한민국 국제청소년 영화제 (0) | 2006.09.19 |
인기 그룹 「아라시」가 11월에 쟈니즈 그룹으로서는 첫 한국 단독 공연을 실시한다. (0) | 2006.09.05 |
미국학생/관광비자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된다 (0) | 2006.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