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도쿄와 서울
지난 해,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철답게 각종 이슈가 신문지상에 넘쳐났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수도이전’문제였다. 인구가 천만에 육박하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수도’의 기능을 떼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공약을 내건 후보는 당선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그런 엄청난 과제를 수행해나갈지를 지켜보는 일이 남았다.
그런데 서울의 수도이전논쟁에서 사람들이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의 수도이전 문제는 예전부터 거론되어왔었다는 사실이고, 일본의 도쿄도 비슷한 양상의 정책이 추진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과연 서울과 도쿄는 어떤 문제를 앓고 있길래 더 이상 수도로서의 기능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전쟁과 지진
우선 기본적으로 서울과 도쿄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주변에 서울과 도쿄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 수도권의 인구 또한 천만명에 육박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아무리 도로와 철도를 건설해도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가 없고, 아무리 주택을 건설해도 집값은보통의 시민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져만 갔다. 이렇게 자석 끌어당기듯이 모든 것을 끌어모은 것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집적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도, 지방으로부터의 노동력도 서울과 도쿄로의 일방통행을 수십년간 계속해 온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두 도시는 빅뱅에 가까운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성장을 거듭할수록 이 매력은 점점 빛을 바래가고 있다. 주택가격은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서의 가격이 아닌 투기대상으로서의 가격이 되어버렸고, 공해, 교육, 도시기반시설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사이타마현이나 경기도와 같은 주변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으나 문제의 크기를 점점 불리기만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울과 도쿄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 많아지고, 땅값이 비싸지고, 따라서 문제 해결 비용도 비싸져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방과의 격차는 그에 따른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을 흡수해 비만증에 걸려버린 수도권의 비계는 사실 지방으로부터 충족된 것이다. 기름진 지방(脂肪)없는 지방(地方)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문화, 교육, 행정, 경제의 중심이 서울과 도쿄로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방역시 경쟁력과 주거지, 투자지로서의 매력을 점차 잃어만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초반의 한국과 일본의 풍경이다. 특히 지방자치제의 성숙도가 일본보다 낮은 한국의 경우 그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 외에도 2차적인 이유로 한국과 일본은 각각 다른 이유를 내세워 수도를 옮기려 하고 있다. 우선 한국은 예전보다 그 절박함이 약해지긴 했지만 안보가 수도이전의 명분이 되었고, 지금도 대치상황이 계속되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셈이다. 휴전선에서 북한의 재래무기공격 사정권에 드는 서울의 지정학적 위치가 수도를 옮겨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였던 시절도 있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대치상황의 대국민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서라도 서울이 휴전선에 가까운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한 긴장감으로 안보를 지켜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이다.
일본의 경우는 전쟁은 아니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은 공포를 가져다 주는 재해가 수도이전의 명분이 된다. 바로 지진이 그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703년, 1782년, 1855년, 그리고 관동대지진으로 알려진 1923년에 도쿄가 있는 관동지방에 진도 7에서 8사이의 강진이 발생했다. 거의 7, 8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난 셈인데, 1923년에 다시 7, 80년을 더한 값은 도쿄시민들에게있어 피부로 다가오는 공포이고, 이 공포가 수도를 옮겨 재해에 대비하자는 정부의 호소에 설득력을 한층 더해준다. 나가노행 신간선 열차를 타다보면 길가에 ‘수백년간 지진이 없었던 군마(群馬), 투자하세요!’라는 입간판을 볼 수 있는데, 이 이국적(?)인 입간판이 드러내는 일본만의 독특한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이전인가, 수도기능이전인가
‘수도이전(首都移轉)’이란 용어는 지금까지는 그냥 편의상 한국측의 용어를 빌려서 써왔지만, 사실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확한 명칭은 ‘수도기능이전(首都機能移轉) 혹은 국회등의 이전(國會等の移轉)’이다. 조금 더 세밀히 이야기하자면, 한국은 행정부의 전면적인 이전 그리고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입법부인 국회의 이전을 필두로 하여 몇몇 행정부서의 이전, 그리고 수상관저의 이전을 그 범위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독특한 수도기능인 일본황실은 이전대상에 들어있지 않다.(그래서 수도이전이 아니라 수도‘기능’이전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전체적인 범위로 보면 그다지 다를 바 없지만, 이전의 중심이 각각 행정부와 입법부에 기울어져 있음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정치체계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의 수도이전계획 역사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정권이 어떻게 교체되느냐에 따라 그 부침을 계속해온것을 보면 일본의 수도기능이전 진행과정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처음 수도기능이전이 논의된 것이 1960년대로 그 이후에도 긴 시간동안 꾸준히 수도기능이전의 범위, 문제점 등에 대해서 연구와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 끝에 1992년이 되어서야 ‘국회등의 이전에 관한 법률(이전법)’이 제정되었다.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도 중요하지만 신중한 추진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충청도, 미에현, 이바라키현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옮기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 대충 결정했지만, 일본은 아직도 결정을내리지못했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라는 어찌보면 독특한 합의방식을 통해 남한의 중심인 충청도 지역으로 옮긴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하여 결정하였다. 새정부가 수도이전에 있어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고속전철, 청주국제공항과의 연계가 쉬울 것, 서울에서 너무 가깝지 않을 것 등이다.
일본이 내세우는 조건도 비슷하긴 하다. 도쿄에서 최소 60km이상 떨어져 있을 것, 신칸센과의 연계가 편리할 것 등이다. 하지만이 두 조건이 비슷한 세 지역이 경쟁을 하고 있다. 미에(三重)지역, 도카이(東海)지역, 토호쿠(東北)지역으로 크게 나뉘어 그 안에서도 몇개의 지방이 경쟁중인 상황이다. 어떤 곳은 아름다운 자연을, 어떤 곳은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성을, 어떤 곳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접근성 편리를 이유로 수도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일을 진행시키는 스타일의 차이는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두 나라의 정치 제도, 국민성 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하는 사람들
두 나라에서 진행되고있는 수도이전 혹은 수도기능이전은 최대다수의 국민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목소리가 없을 수는 없다. 두 나라 모두에서 발견되는 현상은 서울과 도쿄 지방자치체의 반대이다. 중앙정부의 설명에서는 이 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서울과 도쿄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나, 서울과 도쿄지방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공통적으로 첫째, 수도이전의 역사적 인식결핍을 들고 있다.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수도를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비용 문제를 들고 있다. 둘째, 이전비용 문제이다. 그 누가 계산해도 어림짐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전비용에 관한 기나긴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도쿄가 궁극적으로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서울이 공동화된다고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 또한 똑같은 현상을 두고 ‘집값폭락’이냐, ‘집값안정’이냐를 갑론을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뭇 끝이 없어보이는 이러한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근대이전의 역사에서는 아마 천하가 뒤바뀔 정도의 혁명이나 왕조의 교체가 수도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근거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수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수도이전을 해야하는 이유에서 드러나듯, 지금의 수도이전은 그러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 문화적인 측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옮긴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행정부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수단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제정권이나 독재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화끈하게 밀어부쳤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와중에 문제해결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최초의 반석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중앙정부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일 게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터지기 직전의 풍선같은 서울과 도쿄에 숨구멍을 틔워주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겠다.
지난 해,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철답게 각종 이슈가 신문지상에 넘쳐났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수도이전’문제였다. 인구가 천만에 육박하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수도’의 기능을 떼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공약을 내건 후보는 당선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그런 엄청난 과제를 수행해나갈지를 지켜보는 일이 남았다.
그런데 서울의 수도이전논쟁에서 사람들이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의 수도이전 문제는 예전부터 거론되어왔었다는 사실이고, 일본의 도쿄도 비슷한 양상의 정책이 추진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과연 서울과 도쿄는 어떤 문제를 앓고 있길래 더 이상 수도로서의 기능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전쟁과 지진
우선 기본적으로 서울과 도쿄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주변에 서울과 도쿄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 수도권의 인구 또한 천만명에 육박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아무리 도로와 철도를 건설해도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가 없고, 아무리 주택을 건설해도 집값은보통의 시민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져만 갔다. 이렇게 자석 끌어당기듯이 모든 것을 끌어모은 것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집적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도, 지방으로부터의 노동력도 서울과 도쿄로의 일방통행을 수십년간 계속해 온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두 도시는 빅뱅에 가까운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성장을 거듭할수록 이 매력은 점점 빛을 바래가고 있다. 주택가격은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서의 가격이 아닌 투기대상으로서의 가격이 되어버렸고, 공해, 교육, 도시기반시설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사이타마현이나 경기도와 같은 주변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으나 문제의 크기를 점점 불리기만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울과 도쿄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 많아지고, 땅값이 비싸지고, 따라서 문제 해결 비용도 비싸져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방과의 격차는 그에 따른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을 흡수해 비만증에 걸려버린 수도권의 비계는 사실 지방으로부터 충족된 것이다. 기름진 지방(脂肪)없는 지방(地方)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문화, 교육, 행정, 경제의 중심이 서울과 도쿄로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방역시 경쟁력과 주거지, 투자지로서의 매력을 점차 잃어만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초반의 한국과 일본의 풍경이다. 특히 지방자치제의 성숙도가 일본보다 낮은 한국의 경우 그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 외에도 2차적인 이유로 한국과 일본은 각각 다른 이유를 내세워 수도를 옮기려 하고 있다. 우선 한국은 예전보다 그 절박함이 약해지긴 했지만 안보가 수도이전의 명분이 되었고, 지금도 대치상황이 계속되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셈이다. 휴전선에서 북한의 재래무기공격 사정권에 드는 서울의 지정학적 위치가 수도를 옮겨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였던 시절도 있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대치상황의 대국민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서라도 서울이 휴전선에 가까운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한 긴장감으로 안보를 지켜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이다.
일본의 경우는 전쟁은 아니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은 공포를 가져다 주는 재해가 수도이전의 명분이 된다. 바로 지진이 그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703년, 1782년, 1855년, 그리고 관동대지진으로 알려진 1923년에 도쿄가 있는 관동지방에 진도 7에서 8사이의 강진이 발생했다. 거의 7, 8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난 셈인데, 1923년에 다시 7, 80년을 더한 값은 도쿄시민들에게있어 피부로 다가오는 공포이고, 이 공포가 수도를 옮겨 재해에 대비하자는 정부의 호소에 설득력을 한층 더해준다. 나가노행 신간선 열차를 타다보면 길가에 ‘수백년간 지진이 없었던 군마(群馬), 투자하세요!’라는 입간판을 볼 수 있는데, 이 이국적(?)인 입간판이 드러내는 일본만의 독특한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이전인가, 수도기능이전인가
‘수도이전(首都移轉)’이란 용어는 지금까지는 그냥 편의상 한국측의 용어를 빌려서 써왔지만, 사실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확한 명칭은 ‘수도기능이전(首都機能移轉) 혹은 국회등의 이전(國會等の移轉)’이다. 조금 더 세밀히 이야기하자면, 한국은 행정부의 전면적인 이전 그리고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입법부인 국회의 이전을 필두로 하여 몇몇 행정부서의 이전, 그리고 수상관저의 이전을 그 범위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독특한 수도기능인 일본황실은 이전대상에 들어있지 않다.(그래서 수도이전이 아니라 수도‘기능’이전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전체적인 범위로 보면 그다지 다를 바 없지만, 이전의 중심이 각각 행정부와 입법부에 기울어져 있음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정치체계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의 수도이전계획 역사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정권이 어떻게 교체되느냐에 따라 그 부침을 계속해온것을 보면 일본의 수도기능이전 진행과정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처음 수도기능이전이 논의된 것이 1960년대로 그 이후에도 긴 시간동안 꾸준히 수도기능이전의 범위, 문제점 등에 대해서 연구와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 끝에 1992년이 되어서야 ‘국회등의 이전에 관한 법률(이전법)’이 제정되었다.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도 중요하지만 신중한 추진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충청도, 미에현, 이바라키현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옮기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 대충 결정했지만, 일본은 아직도 결정을내리지못했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라는 어찌보면 독특한 합의방식을 통해 남한의 중심인 충청도 지역으로 옮긴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하여 결정하였다. 새정부가 수도이전에 있어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고속전철, 청주국제공항과의 연계가 쉬울 것, 서울에서 너무 가깝지 않을 것 등이다.
일본이 내세우는 조건도 비슷하긴 하다. 도쿄에서 최소 60km이상 떨어져 있을 것, 신칸센과의 연계가 편리할 것 등이다. 하지만이 두 조건이 비슷한 세 지역이 경쟁을 하고 있다. 미에(三重)지역, 도카이(東海)지역, 토호쿠(東北)지역으로 크게 나뉘어 그 안에서도 몇개의 지방이 경쟁중인 상황이다. 어떤 곳은 아름다운 자연을, 어떤 곳은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성을, 어떤 곳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접근성 편리를 이유로 수도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일을 진행시키는 스타일의 차이는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두 나라의 정치 제도, 국민성 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하는 사람들
두 나라에서 진행되고있는 수도이전 혹은 수도기능이전은 최대다수의 국민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목소리가 없을 수는 없다. 두 나라 모두에서 발견되는 현상은 서울과 도쿄 지방자치체의 반대이다. 중앙정부의 설명에서는 이 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서울과 도쿄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나, 서울과 도쿄지방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공통적으로 첫째, 수도이전의 역사적 인식결핍을 들고 있다.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수도를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비용 문제를 들고 있다. 둘째, 이전비용 문제이다. 그 누가 계산해도 어림짐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전비용에 관한 기나긴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도쿄가 궁극적으로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서울이 공동화된다고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 또한 똑같은 현상을 두고 ‘집값폭락’이냐, ‘집값안정’이냐를 갑론을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뭇 끝이 없어보이는 이러한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근대이전의 역사에서는 아마 천하가 뒤바뀔 정도의 혁명이나 왕조의 교체가 수도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근거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수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수도이전을 해야하는 이유에서 드러나듯, 지금의 수도이전은 그러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 문화적인 측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옮긴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행정부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수단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제정권이나 독재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화끈하게 밀어부쳤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와중에 문제해결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최초의 반석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중앙정부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일 게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터지기 직전의 풍선같은 서울과 도쿄에 숨구멍을 틔워주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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