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린 한국
후배 박철현씨의 글입니다.
오늘 퇴근하다가 니혼케이자이, 즉 일본경제신문을 주워서 심심해서 읽고 있는데 국제면(아시아태평양)을 한국과 북한이 도배를 했군요. 요즘 들어 각 메이저 신문의 국제면은 한국과 북한과 미국의 대결장입니다. 하긴 일본은 이번이 고비니까요. 동북아에서 다시 일어서느냐 마느냐의 절박한 시기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고이즈미의 개혁 드라이브가 시동이 다시 걸리고, 우체국 민영화라는 필생의 숙원을 통과시키면서 자민당 매파들과의 대결에서 일단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납치사건과 관계없이 북한과 수교 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여론조사 결과 63%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뭐랄까 그동안 정체되어 있어서, 그래서 썩어서 고여 버렸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일본국민들이 서서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업계와 자동차업계도 과감히 합병을 추진하거나 공동개발 계획 등을 세우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 최고의 상장회사인 에닉스(드래곤퀘스트라는 명작을 만들었습니다)와 스퀘어(파이날 판타지죠)가 주식비율 1 대 0.88로 합병을 했습니다. 일본 국내시장 유저들의 기호에 걸맞은 작품을 선보인 에닉스로서는 북미와 유럽에서 대인기를 끌고 있는, 그리고 온라인에 대한 명석한 이해를 보이고 있는 스퀘어의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에 대해 흥미를 느낄만 합니다. 물론 스퀘어역시 에닉스의 그 장인의식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번 합병은 금상첨화입니다.
도요타와 닛산이 수소를 원료로 한 최신 연료전지 자동차(500킬로미터를 갈 수 있답니다. 가솔린을 사용하지 않고 말이죠. 태양열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판명된 이 시점에서 수소자동차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게 참 대단하군요)를 개발하기 위해 합의했다는 기사가 오늘자에 실려 있군요. 재미있는 거라면, 스퀘어/에닉스, 도요타/닛산이라면 동종업계의 라이벌 중 라이벌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엘지/삼성 전자제품 사업부라고나 할까요. 그 라이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합병 혹은 공동개발에 동의했다는 점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한국에 대한 기사를 좀 훑어보자면, 작년 말 아시아 주식 시가 총액을 다룬 특집 기사가 있네요.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의 주식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주요한 4개의 국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상위 20위 순위를 다루고 있는데, 순서별로 적어보겠습니다.
<아시아기업의 주식시가 총액 랭킹> * 괄호 안은 2001년 연말 순위
순위 기업명 시장 시가총액*백만달러 단위
1(1) HSBC 은행 홍콩 103,629
2(2) 중국이동(홍콩) 통신 홍콩 46,793
3(5) 삼성전자 한국 40,435
4(4) 허치슨원포아(통신항만) 홍콩 26,679
5(3) 적체전로제조(반도체) 대만 22,817
6(3) 한센은행(은행) 홍콩 20,348
7(10) SK텔레콤 한국 17,213
8(6) 장강실업(부동산) 홍콩 15,073
9(12) 중화전신(통신) 대만 14,290
10(9) 신조기지산(부동산) 홍콩 14,224
그 외의 한국기업
11(15) KT통신 한국 13,212
13(14) 국민은행 한국 11,624
17(18) 한국전력 한국 9,849
여전히 홍콩세가 압도적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기업들의 주식시가가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전부 올랐다는 사실이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전통적으로 아시아의 갑부라고 하면 의례 떠올랐던 홍콩과 대만의 부동산 재벌들이 반도체 업종에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SK텔레콤의 약진은 눈부시군요.
그리고 또 한가지 전자반도체 계열의 실질적인 1위가 삼성이라는 게 눈에 띠네요. 참고로 삼성의 인기는 이곳 일본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일본에서 전철역에 스킵광고 때리고 시부야 센터가 빌딩에 삼성이라고 대문짝만하게 걸어놓는 한국기업은 아직 삼성밖에 없습니다. 물론 싸다는 인상이 강하기는 하지만 충실하게 원투맨 전략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서서히 시장인지도와 제품구매력이 강해지고 있지요. 빅카메라나 요도바시 카메라 등의 전자제품 백화점에서도 삼성은 매출만 따지자면 언제나 소니와 더불어 1~2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싸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싸면서도 제값이상을 한다라는 인상을 제대로 심어준 듯 합니다.
기사 본문의 내용 중에도 나와 있는데, 삼성이 2002년을 기점으로 일본 주식시장 랭킹 4위의 소니 주가 총액 4조 6천억엔을 뛰어넘는 4조 8천억엔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매일 국제화 세계화 부르짖으며 영업력에만 신경쓰 다 망한 대우에 비교한다면, 삼성의 기획력과 기술력은 음미할만합니다. 설마 재벌 옹호한다고 비난하거나 그러지는 마세요.
옆면에 한국만의 특화된 도로기금에 관한 기사도 나와 있네요. 이거 완전히 한국판입니다 그려. 호주 최대의 투자은행인 맥콜리 은행이 한국의 도로건설운영에만 투자를 하는 펀드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투자 총액은 약 410억엔 규모가 될 거라고 하네요. 외국의 투자회사가 전자반도체 등의 테크놀러지 분야가 아닌 기간산업에 투자해준다고 하니 상당히 고맙네요. 이번 기회에 많이 착취(?)해야겠습니다.
그 다음 면으로 넘어가 보니 북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니혼케이자이는 경제신문 중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인데, 요즘 들어 상당히 변했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오히려 닛케이(일경)가 보수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참고로 울 회사 닛케이 보고 있습니다.) 아참 산케이(산경)를 보수신문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모르겠는데 산케이는 극우신문입니다. 헌법기념일날 극우주의자들이 데모하는 거 일면 탑에 실어 주고 사설로 칭찬합니다. 산케이를 읽다보면 꼭 조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가 퇴근할 때쯤 되는 일본의 전철은 아주 복잡합니다. 사람이 아주 많죠. 그런데 아주 조용해요. 처음에는 그 조용함이 패기 없고, 사양길로 접어든 일본인들의 [허무]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 그 [조용함]이 조금은 무섭습니다. 무언가 칼날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위기감과 동북아에서의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찾고 있다 그런 느낌입니다. 우파지만 개혁적인 고이즈미는 당내 소수파였던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고, 납치문제로 북한을 그렇게 악당들로만 보았던 일본인들이 실제 여론조사 결과 60%이상이 국교정상화를 원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업계의 라이벌들이 합병하거나 공동개발 등을 통해 코스트를 낮추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일본은 아직 죽지 않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한국은 과연 월드컵과 대선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단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뭐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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