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늘의 수필, 수필가 황태영 선생의 글 (쌀뒤주 마개와 나지막한 굴뚝이 만든 기적)

푸른하늘김 2012. 10. 17. 09:01

오늘의 수필, 수필가 황태영 선생의 글 (쌀뒤주 마개와 나지막한 굴뚝이 만든 기적)
 

 

 
곧은 나무가 먼저 베여지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게 된다. 도둑을 잘 지키는 개는 잘 물고 잘 짖는 탓으로 도둑의 칼에 맞아 죽게 되고, 잘 달리는 천마는 잘 달리는 것이 탈이 되어 장군을 태우고 전쟁터를 질주하다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표범은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된다. 잘난 것이 미끼가 되어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가 있다. 그럼에도 모두 잘남과 많음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다. 자화자찬과 오만했던 권력자들은 늘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겸허하게 나눔과 베풂을 실천했던 분들은 극심한 변혁기에도 그 덕이 빛날 수 있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영조 때(1776년) 낙안군수 류이주 선생이 지은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운조루는 조선왕조 양반가옥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7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완공될 만큼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하다. 조선시대 대군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60칸을 넘어 99칸의 규모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는 비극적인 대변혁이 많았다. 동학농민운동과 활빈당, 일제 강점기, 여순반란사건, 6·25 전쟁 등 지주계급은 무참히 처단되고 가옥은 소실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동란의 한 가운데인 지리산 자락에서 있으면서 대저택인 운조루는 230년이 넘도록 그 원형을 지키며 보존돼 왔다.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이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숨겨져 있다.

 

 

첫째는 ‘타인능해(他人能解)’이다. 이는 ‘누구든지 쌀뒤주의 마개를 풀어도 된다’는 뜻이다. 운조루의 후미진 곳간 채에는 커다란 쌀뒤주가 있었다. 이 뒤주의 아래 부분에 가로 5cm, 세로 10cm 정도의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여닫는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 두었다. 즉, 누구든 마음대로 마개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었던 뒤주였던 것이다. 운조루는 이 뒤주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두어 쌀이 필요해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끔 세심하게 배려까지 해주었다.

 


둘째는 ‘나지막한 굴뚝’이다. 한옥은 굴뚝이 높아야 한다. 아궁이를 지면풍의 불안정한 기류보다는 안정된 상층 기류와 연결해야 연기가 잘 빠지게 된다. 즉,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잘 빠지고 열 손실이 낮아져 집이 따뜻하게 된다. 그러나 운조루의 굴뚝은 사람 키 반 정도밖에 안 될 만큼 다른 집에 비해 아주 낮다.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식량이 부족한 이웃이 많은데 밥 짓는 연기를 날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것 내 맘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가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겸손과 공존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낮은 굴뚝은 연기뿐 아니라 오만과 독선을 내뿜지 않으려는 배려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과시하지 않고 없다고 구걸하지 않는 정신이 큰 화를 막고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운조루는 200여 년 동안의 선행이 있었기에 대변혁기 속에서도 기적처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운조루 주인의 마음이 모두를 감동시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돈과 지위만 얻으면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들 믿는다. 그러나 운조루보다 큰 대부호와 지주들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갔고 집안의 대가 끊겼다.

 


역사는 ‘난세를 배려와 공존의 지혜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요즈음 힘들다고들 많이 말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난세(亂世)가 아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코끼리는 이빨(象牙)이라는 보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을 불태워 죽임을 당한다. 나의 잘남을 자랑할 것도 남의 잘남을 부러워 할 것도 없다. 드러내지 않으며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우쳐 가야 한다.

 

 


-<편지가 꽃보다 아름답다>(도서출판 독서신문) 황태영 선생의 수필집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수필가 황태영 선생: 1961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출신, 대구고, 건국대 법대 졸업, 오랫동안 증권사 및 투신사 근무, 수필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