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리핵실험 논란과 관련하여
글: 김종성
‘1998년에 행해진 파키스탄의 두 번째 핵실험이 북한을 위한 대리핵실험이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관한 문제제기는 이미 2004년에도 한차례 있었다. 2004년 2월 27일자 <뉴욕타임스>는 “1998년에 파키스탄이 행한 핵실험이 북한과의 공동실험이었을 가능성이 미국측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문제가 최근 들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월간 <말> 3월호 기사 때문이다.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북미평화센터(http://www.cfkap.com) 김명철 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998년에 행한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북한을 위한 대리핵실험”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명철 박사 인터뷰는 국내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어, <연합뉴스>, <중앙일보> 등에서 월간 <말> 3월호 인터뷰를 비중 있게 보도한 바 있다.
지난 3월 16일 미국의 군사전문가인 존 파이크 역시 국내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1998년 파키스탄에서 행해진 두 번의 핵실험
중에서 두 번째 것은 북한의 핵실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확인해주었다. 존 파이크는 ‘두 번째 핵실험에서 플루토늄이 검출되었다는 미 정보당국의
분석’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모 국내 언론이 존 파이크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제시한 근거들이 너무나 박약하다는 점이다. 그 언론에서는
박약한 근거들을 나열한 다음에 “파키스탄의 북핵 대리실험 가능성 낮다”는 결론을 쉽사리 도출하고 말았다.
그 기사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존 파이크와의 인터뷰이고, 존 파이크는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북한을 위한 대리핵실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론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는 국내 전문가들의 주장을 근거로 전혀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강정민 박사는 “파키스탄 핵전문가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파키스탄 핵전문가라고 해서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비밀교섭을 다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며, 또 그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한국 학자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듣지 못한 것이라 하여, 비중 있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기사에서 제시된 두 번째 근거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의 주장이다. “사실확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 고 교수의
주장이다. 북한 내부사정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높은 김명철 박사의 진술을 부정하려면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사실확인이 안된다는 이유를 제시한다는 것은 결코 학문적 방법이 아니다.
그들은 파키스탄이 행한 두 차례의 핵실험에서 나타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이
왜 핵실험을 했는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파키스탄이 핵개발을 하는 동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와의 경쟁 때문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카슈미르문제를 놓고 장기간의 대립을 벌여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바로 핵개발 경쟁이었다. 인도는 이미 지난 1974년 5월 18일에 지하핵실험을 한
바 있고, 이어 1998년 5월 11~13일에 또 다시 지하핵실험을 강행했다. 인도는 이러한 핵실험을 비밀리에 하지 않았다. 핵실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파키스탄을 견제함은 물론 국내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바즈빠이 총리의 계산이었다.
같은 달에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도 인도에 대한 견제용이었다. 파키스탄은 5월 28일 및 30일에 걸쳐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나와즈 샤리프 총리는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도에 대한 ‘보여주기’ 차원에서 이 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압둘 카데르 칸 박사는
5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로써 파키스탄의 핵능력이 입증되었다”면서 자랑스러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존 파이크의 말처럼, 파키스탄측은 5월 28일에 행한 첫 번째 실험에 관하여는 상세한 정보를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실험에 관하여는 정보를 숨겼다는 점이다.
인도에 대해 보여줄 목적의 핵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유독 두 번째 실험에 관한 정보만 숨겼던 것이다. 파이크의 말대로, 그것이 북한을 위한 대리핵실험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대리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국민이나 인도에게 과시용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실험 모두 파키스탄의 핵실험이었다면, 파키스탄이 두 번째 핵실험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을 리 없는 것이다.
파이크의 말대로 두 실험 모두 파키스탄의 핵실험이었다면, 두 실험에 참여한 연구진이 서로 동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 실험은 각각
다른 주체에 의해 그것도 서로 떨어진 거리에서 행해졌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파이크의 진술은 기본적으로 김명철 박사의 언급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파이크가 CIA같은 권위 있는 정보기관의 분석을 토대로 주장을
했는데, 국내 학자들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그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학문적 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적으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라
하여 그것이 언제나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북핵위기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북한에 핵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 핵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수긍하면서 그
해법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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