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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에서 찍은 이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참 아름답다.

푸른하늘김 2006. 11. 10. 00:31

 

 

 

 

 

 

 

 

단양에서 찍은 이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참 아름답다.
나의 단양여행기
  
 
 
 
지난 주 토요일 소백산의 북쪽에 위치한 충북 단양에 다녀왔다. 대학 동기생들의 모임이 있어서 일을 빨리 끝내고 청량리에서 안동행 열차를 탔다. 사실 나는 쓸쓸하고 외로울 때면 청량리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이름 없는 간이역들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동해안의 강릉으로 가는 꿈을 자주 꾸곤 한다.

 

길~~
길, 쭉 뻗은 고속도로도, 어딘가로 마냥 이어져있는 철길도, 길 위에 서면 사람들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다.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로 흘러가서 어디에서 끝날지는 잘 모르지만, 길이 이어져 있다면 오늘도 멈추지 않고 가야만 하는 것, 그것이 삶일까?

한참을 걸어왔다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제자리걸음을 한 것일지라도, 그 씁쓰름함에 서서 눈물지을지라도 그렇게 내가 걸어왔던 길을 누군가가 또 뒤따르며 걷고 있겠지.

 

난, 길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고향집 옆에는 철로가 있었다. 여름날 문을 다 열어놓고 잠을 청하면,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단잠을 깨우는 그 소리도 난 마냥 좋았다. 마치 수학여행 전날 밤의 설레임처럼.

 

그리고 오늘 난, 그 설렘으로 양평을 지난 원주를 거쳐 단양으로 가는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후 2시 단양역에 도착했다. 십여 명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합실이 일순 조용해진다. TV에서는 드라마 ‘황진이’를 방송했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황진이를 봤다. 고즈넉함이 참 좋았다. 때론 고즈넉한 쓸쓸함이 가슴을 가득 채울 때도 있나보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서 황진이를 보며 혼자 킥킥거린다.

 

버스를 타려고 밖으로 나와 보니 역전에 강이 흐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역이 있을까? 한 폭의 그림 같다. 단양역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며 가을 햇살 속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림 속의 단양역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해진다.

 

도담삼봉을 가려하는데 차가 없다. 버스 편을 보니 한참이나 기다려야하고, 시골버스를 타달타달 타고 여행하는 꿈을 꿨는데 역시나 잘 안 된다. 오랜 도시생활, 속도감에 길들여진 내게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여유로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히치하이킹을 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는 지나가는 차는 승용차든 트럭이든 무지하게 얻어 타고 다녔는데, 세상이 각박해지고 타향살이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못해봤다. 난 운전하는 그들이 무섭고 그들도 내가 무서웠(?)겠지.

 

도담삼봉~~
오랜 가뭄으로 수위가 많이 내려가 있다. 그 위에 솟아오른 봉우리 세 개. 그래서 도담삼봉인가? 누군가가 그중 제일 큰 봉우리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란, 그 위에 서서 자연을 즐기며 물아일체의 경지를 맛보던 곳이다. 그래서 정자는 주변의 경치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세워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담삼봉에 있는 정자는 내가 보기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자 같다. 저곳에 어찌 올라갔을까? 어쩜 저곳은 올라가 풍류를 즐기는 곳이 아니라 멀리서 감상하기 위한 곳일지 모르겠다. 때론 세상살이가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보다 멀리서 조망하는 것이 더 운치 있듯 말이다.

 

거기서 다시 차를 얻어 타고 석회암 동굴로 유명한 고수동굴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시내를 찍었다. 배산임수, 뒤에 산을 앞에 강. 참 아담하다. 단양은 걸어서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차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만하는 대도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걸어서 동서남북을 다 갈 수 있는 소도시 단양이 좋아졌다. 이따 되돌아 올 때는 시내로 편한 마음으로 걸어오자고 마음먹었다.

 

고수동굴~~
명성에 비해 참 초라하다. 근데 난 도리어 그게 푸근하다. 잠시 수 백 만년 품어온 지구의 신비에 내 몸을 맡겨본다. 고수동굴에서 나와 구인사에 가려했지만, 약속시간이 다되어 안 될 것 같다. 너무 아쉬워하며 단양시내를 걸어걸어 약속장소인 콘도까지 갔다.

 

친구들~~
대학친구들 모임을 가면 우리들은 의례적으로 마지막엔 '친구'노랠 부르곤 한다. 지금도 친구노랠 부르면 가슴이 싸해진다. 정치시사적인 쟁점에서부터 개인의 신상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와 밤샘토론. 친구의 생일잔치도 하고, 결국 밤새 떠들다 잠든 시간이 새벽 5시.

 

오랜만에 만났어도, 마치 어제 밤까지 수다를 떨다 헤어진 사람들처럼 스스럼이 없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우리 이제 나이 사십이 다 되었다. 더욱 더 열심히 살자.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서 구인사에 갔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실망,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원하는 절은 세월의 때가 묻어있는 맛이 있는(?) 절이었는데, 새롭게 지어진 절의 풍경과 사람들의 분주함이 맛없는 시장바닥에 온 것 같다. 풍경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일주문 위에 피어있는 이끼를 보았다. 기왓장 그 딱딱한 바닥에서도 생명이 움트는 것이, 그 질긴 애절함이 좋았다. 구인사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이다. 한 컷.

 

돌아오는 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단양역에 도착했다. 비 내리는 대합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서 다음 모임을 약속했다. 그땐 가족들 모두 불러 선배, 후배들과 함께 하자고. 비록 근근이 이어가더라도 이렇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으면, 연락이 안 되거나 떠났던 친구도 언젠가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 말이 좋았다. 내가 힘들어 잠시 떠나도 이 녀석들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다시 돌아갈 때 자리하나 만들어 반기겠구나. 그렇게 우리가 주축이 되어 선배들도 후배들도 다시 만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이 길이고 강이다. 도도히 큰 강줄기가 흘러가면 단절되었던 지류는 이어지곤 할 것이다. 가뭄에 물이 없으면 없는 대로, 홍수에 물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작은 물줄기가 변화를 거듭해도 큰 줄기는 넉넉히 바다를 향해 갈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큰 줄기처럼 하나가 되어 흘러갈 것이다.

 

기차를 타려고 선로를 건너오는데 손을 흔들어주는 친구들 모습이 정겹다. 이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