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 64 염형철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애틋하고 작은 존재들
아이가 6살이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아이가 복통과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열에 달뜬 아이가 해열제를 삼키고 이마의 물수건이 떨어질 세라 얌전히 누웠는데, 잠시 내리던 열은 심술을 부리듯이 이내 아이의 몸을 달구었습니다.
아이를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장염이라고 진단하고 사흘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이,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작은 팔이 낯설어 낙담했던 감정이 선명합니다. 병원에서의 사흘 내내 아이의 열은 잡히지 않았으며, 아이는 가쁜 숨을 쉬며, 엄마 배가 많이 아파요, 말했습니다.
덤덤하던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진단을 했습니다.
어, 맹장이네?
오진이었습니다. 아이는 맹장염이었고 사흘 뒤 의사가 다시 살폈을 때는 이미 맹장이 터졌습니다. 급히 큰 병원 수술실이 있는지 알아보았고, 당장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애초 ‘입원’이라는 말에 낙담했던 제 마음은 ‘수술’이라는 말에 아찔했습니다. 저 작은 아이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하다니…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하기에 집에 들러 옷가지를 챙기기로 했습니다. 배를 움켜 쥔 아이는 차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지우야, 잠깐 같이 집에 가자. 네가 좋아하는 책도 챙기고 옷도 가져오자.”
아이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 안 갈래요. 저는 다 낫고 나서 집에 갈래요.”
며칠 전 장항습지의 고라니 영상을 보았습니다. 매일같이 장항습지를 드나들며 홍수로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물골을 모니터링하고, 교란종이 다시 기세를 확장하는지 살피는 박평수 이사님이 찍어서 올려준 영상이었습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암컷 고라니 한 마리가 경쾌한 몸짓으로 습지 저편으로 뛰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름답구나…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라니의 분명 따스할 몸뚱어리. 어미의 몸에서 툭 떨어져 습지의 땅에 두 발로 서서 살아왔을 고라니. 홍수와 더위, 들개의 위협에서 벗어나 경쾌하게 하늘을, 들판을 바라보는 무구한 시선.
장항습지에 사는 고라니들이 많지만,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인간들에게 버려진 들개는 살아남기 위하여 거칠어졌으며, 자연의 변덕도 그들의 삶을 힘겹게 합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선악 판단이 없고, 개입을 하기도 어렵겠지만, 저 순진무구한 존재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주면 좋겠다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봅니다.
홍수가 지기 전 샛강에도 길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있었습니다. 한 번은 로드킬을 당했음직한 누렁 고양이 한 마리가 갈대숲 사이 죽어 누워있는 것을 (다친 몸을 끌고 샛강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염대표님이 묻어주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 염대표님은 몇 달 전에 암컷 고양이가 새끼 네 마리를 낳은 것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는 출산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는지 자궁인지 내장인지 덜렁덜렁 나와있는 것 같더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 녀석, 곧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해주는데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큰 홍수가 지고 샛강이 한참 동안 잠기고 나서 다시 거짓말같이 물이 다 빠졌습니다. 군데군데 캣맘이 기를 쓰고 두었던 고양이 집들은 홍수에 쓸려 강가 진흙과 갈대 사이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둔덕에서 햇빛을 쬐곤 하던 그 고양이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생태공원에 고양이가 공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깃들어 살던 몇몇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추자, 그들은 어디서 그 작은 목숨을 이어갈지 떠올리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합니다.
#몰래카메라, 아닌데요.
한강에 수달들이 산다면, 그것은 한강이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는 지표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봄부터 시작했습니다. 수달이 사는 한강을 위한 생태지도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한강 상류부터 물줄기를 따라 관찰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수달을 관찰하려다 보니, 당연히 강가에 바싹 다가가서 설치했습니다. 효과가 있었지요. 수달도, 살쾡이도, 고라니도, 또 여러 새들도 카메라에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큰 홍수가 나니 카메라들이 무사할지 알 수 없었지요.
정은대리가 카메라 설치 장소 하나하나 다 돌아다녀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8개가 홍수로 유실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개 설치장소에는 경찰서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몰래 카메라로 신고되어…’
산책하던 시민이 몰래 카메라로 여기고 신고를 했고, 경찰이 와서 수거해갔습니다. 정은대리는 경찰서에 가서 수달 관찰 카메라라고 설명하고 돌려받을 수 있었지요. 그저 해프닝이었지만 몰래카메라로 오인받은 일은 씁쓸합니다. 이 사회에 몰카가 만연하다는 반증이니까요.
코로나 안전을 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시민들과 함께 수달을 배우고 모니터링하는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사흘 내내 몇몇 학생들과 수달 공부를 했고, 신화용 박사님과 현장 조사를 다녔습니다. 수달이 사는 한강, 응원해주실 거지요?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코로나 2.5 단계, 연초부터 시작되어 내내 이어지는 코로나 위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with Corona’ 시대… 함께 힘을 내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일이 ‘코로나 블루’를 이기는 방법이겠지요. 그래도 다들 어려운 시기에, 한강은 어떻게 꿈꾸는 일들을 펼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도 잘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뻔히 다들 힘든 거 아는데 선뜻 도움을 요청하기도 난감한 일이고요. 그러던 차에 어제 한강의 정영원 감사님이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감사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고맙습니다, 말을 하고 나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냥,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민망하여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희가 참 복이 많구나,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많구나 싶으니 새삼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고 군말 말고 밀어줍시다.” 이사회를 열 때마다 이렇게 호탕하게 말씀해주시는 강우현 이사장님이 한강에는 계시고, 초창기 적자를 연연하지 말고 사업을 힘있게 펼치라고 해주는 조진용 회계감사님이 있고, 조용히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너무 열심히 하려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는 정영원 감사님도 있습니다. 일일이 거명하지 않아도 비단 이사님들 만이 아니라, 조합원 선생님들 중에도, 자원봉사자들 중에도 큰 힘을 보태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요즘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붉은 노을, 그리고 가끔 비 온 뒤 떠오르는 무지개가 눈부십니다. 이런 것들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 일상을 위로해줍니다.
건강하시고, 맑은 가을 하늘처럼 좋은 날들 만들어가시길 바랄게요.
2020.09.11
박이 여물어가는 샛강에서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로 48 여의도샛강생태공원 방문자센터 (여의도역 1번 출구)
Office. 010-9837-0825
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