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이 띄우는 아침의 시 23]
씨앗은 먼저 아래로 내려간다
줄기 먼저 올리지 않는다
막막한 절망의 땅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손 뻗어 보고
캄캄한 날들과 오래 싸워 보고 난 뒤에
뿌리 내린 만큼 줄기를 올린다
백년이 지나도 이 원칙은 버리지 않는다
시멘트 금간 틈새 위로 몸을 밀어 올릴 때나
돌 틈으로 무모하다 싶은 시도를 할 때는
이미 뿌리들끼리 튼튼히 손을 잡은 다음이다
꽃은 그런 바탕 위에서 피우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꽃은 없다
- 도종환 '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