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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도종환

푸른하늘김 2020. 4. 4. 13:00

[도종환이 띄우는 아침의 시 23]

 

씨앗은 먼저 아래로 내려간다

줄기 먼저 올리지 않는다

 

막막한 절망의 땅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손 뻗어 보고

캄캄한 날들과 오래 싸워 보고 난 뒤에

뿌리 내린 만큼 줄기를 올린다

백년이 지나도 이 원칙은 버리지 않는다

 

시멘트 금간 틈새 위로 몸을 밀어 올릴 때나

돌 틈으로 무모하다 싶은 시도를 할 때는

이미 뿌리들끼리 튼튼히 손을 잡은 다음이다

 

꽃은 그런 바탕 위에서 피우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꽃은 없다

 

- 도종환 '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