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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설정식

푸른하늘김 2020. 1. 13. 13:22

故鄕/설정식

 

싸리 울타리에 나즉히 핀

박꽃에 옮겨나는 박호의 그림자

이윽고 숨어들고

희미한 달그림자에 어른거리던 박쥐의 긴 나래

뽕밭 너머로 사라질 때

할아버지여 지금도

마당에 내려앉아

고요히 모깃불을 피우시나이까

 

늦은 병아리 장독대에 삐악거리고

이른 마실 떠나는 소몰이꾼이

또랑길을 재촉할 때

곤히 잠들은 조카의 머리맡에

돌아앉아

할머니여 오늘 아침에도

이빠진 얼게로 조용히

하이얀 머리를 빗으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