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5
한강 선생님들께,
대기업의 영업팀장이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 무난히 살아가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사에서 좌천당하여 시설관리 담당이 되고 널찍하고 볕이 잘 드는 고층 사무실에서 지하로 업무 공간도 옮겨집니다. 남자는 당장 아들 학교 학부모회 모임 때 돌릴 명함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누구와 어울려 밥을 먹기도 영 거북해집니다. 회사 근처에서 혼자 먹거나 굶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영 그렇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필용입니다.
김금희 작가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팀장에서 ‘담당’으로 좌천당한 필용의 점심 시간은 괴롭겠지요. 그래서 그는 점심시간에 무작정 걷게 됩니다.
‘그래서 필용은 종로로 나갔다. 종로에 나가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걷다 보니 종로까지 간 것이었다. 필용은 걸으며 울었다.’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중)
매일같이 점심시간이면 종로로 걸어나가던 필용이 우연히 16년 전 청년 시절 애매하게 사귈락 말락 했던 여자를 만납니다. 여자의 이름은 양희. 가난하던 20대 청춘 시절, 그들은 같이 어학원을 다니며 점심을 맥도날드에서 때우곤 하던 사이입니다. 그 시절 양희는 난해하고 재미없는 희곡을 쓰곤 했는데, 세월이 흘러 연극배우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은 이제 점심시간마다 양희의 연극을 보러 거의 텅 빈 극장에 오는 필용을 통해 그들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을… 너무 한낮의 연애, 대체 ‘너무 한낮’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요.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었습니다. 벌써 연말이라니 믿기지 않기도 하고 살짝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올해 스쳐온 시간을 더듬다 보니 상념에 젖어 ‘너무 한낮의 시간’와 흘러온 시간들을 반추해봅니다.
선생님들의 올 한해는 어떠셨는지요? 마지막 달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계신지요? 고삐에 매인 말처럼 그저 부지런히 달리기만 하다가도, 가만히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말이라는 시간이 아닐까요. 가끔은 혼자서 길을 걸으며 새가 깃을 정리하듯이, 우리도 ‘마음의 깃’을 다듬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이번 주부터 본격 ‘한낮의 샛강 산책’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화목 정오의 시간 (필용이 양희를 만나러 종로 거리를 걸어가는 시간), 겨울이라 한결 여백이 많아진 샛강 숲으로 걸어봅니다. 해설이 있는 샛강 산책이긴 하지만, 말은 좀 줄이고, 천천히 숲 속 작은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화요일과 목요일 ‘너무 한낮’인 정오에, 저희 한강의 유선생님과 김선생님이 숲 입구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올 한해 한강조합은 많은 좋은 활동을 했고, 아홉 명의 참 좋은 직원들이 모였으며, 조합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샛강과 장항습지를 가꾸어 주었습니다. (올해 한강을 다녀간 자원봉사자만 해도 3천명 가까이 됩니다.)
초여름부터 본격 시작했던 두 연구도 이번 주에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한여름 이용태 연구원을 비롯한 노선팀 네 명이 한강길 596km을 답사하며 좋은 강길을 만들려고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한강조합을 꿈꾸던 시기, 혼자서 그 한강길을 다 걸었던 염형철 대표가 보고서 작성에 몇 주 동안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 결과 430 페이지의 보고서가 나왔는데, 고생은 했지만 뿌듯한 성취였다고 자부합니다. 저희는 하루라도 빨리 이 좋은 강길들을 선보이고 싶어 설렙니다. ^^
한강유역에서 진행되는 환경교육프로그램을 망라해서 조사 분석하고, 생태복원지를 위한 좋은 환경프로그램을 설계하는 환경보전협회 용역 연구도 잘 마쳤습니다.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강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110만평 장항습지의 미래를 상상하는 장항습지포럼도 어제(12.4) 무사히 잘 마쳤고요.
경이로울 만큼 부쩍 성장한 한강조합은 그 모두가 조합원과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강이 빛나는 밤에’ 송년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12월 20일 금요일 저녁입니다. 오셔서 같이 웃고 담소를 나누며 마음 편히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와주실 거지요?
그제는 잠깐 첫눈도 내렸습니다. 샛강 버드나무 숲에도 흰 가루 같은 것이 풀풀 날리는 것을 보았지요. (강아지 마냥 뛰쳐나갈까 말까 하는 사이 눈이 그쳐 아쉬웠습니다. ^^)
날이 많이 춥습니다. 따듯하게 건강 잘 챙기며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희 한강도 선생님들께 첫눈처럼 반갑고 기분 좋은 설렘을 주는 그런 한강이고 싶습니다.
좋은 날들 되시길 바라며.
한강조합 사무국 일동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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