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는 메지 말자
"이 나라에서 대체 혁신 성장을 위해 총대 메는 사람이 누구냐. 나는 모르겠다. 그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오늘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어느 기사의 첫 번째 문장이다. 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총대를 메다’라는 표현은 일반인뿐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의 기자나 논설위원도 아무런 의심 없이 쓰고 있다.
더군다나 대표적 인터넷 포털의 Q&A 란에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대답도 올라와 있다. 요약하면, “옛날에는 총이 무거웠고 귀했기에 사격술이 뛰어난 사람이 멨다. 그러므로 총을 어깨에 멘 자는 적의 표적이 되어 먼저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남의 앞장을 선다는 의미가 되었다.”
여기서의 총대는 총열을 받친 나무, 총자루를 말한다. 엄밀히 말해 메는 것은 총대가 아니라 총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총대를 겨눈다’는 말도 있으니 ‘총대를 멘다’는 표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총대는 단지 메는 것이지 남의 대표가 된다는 의미로 쓰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엇비슷하니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언어문화를 위해서도 왜곡된 말이 바른말로 정착되도록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문제는 우리가 총대를 총기로 오해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한다. 지금 당장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오해를 깨칠 수 있다. 즉 사전에는 총대는 한자로 總代이고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풀이로 ‘예전에 마을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이라고 나와 있고, 그 예문으로 “의논이 정해져야 할 테니 어서 마을 총대 될 사람과 만나게 해 주소. 출처 <<황석영, 장길산>>”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총대는 ‘각 대신의 총대위원장(고종, 1895)’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장길산의 시절(숙종) 때에도 총대라는 단어를 썼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스럽다. 즉 사전의 예문이 된 원문 자체가 오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신문을 찾아보면, 유명인사의 장례식에 ‘총대 아무개’라고 되어 있는데 추도자들 대표 아무개라는 말이다. 그리고 ‘총대를 선정하고’ ‘총대가 되고’ ‘조합의 총대를 선거하고’ ‘지주총대인회’ ‘경성부는 동총대(町洞總代 동대표) 초대회를 열고’ ‘아무개는 일제 때 총대를 했답니다’라는 용례가 보이고 손가락 몇 번만 클릭해도 수많은 용례를 찾을 수 있고, 일본에서는 졸업식의 졸업생 총대(대표)가 가장 많이 쓰이는 용례인 듯하다.
여기서의 총대는 분명 장총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른 표현은 ‘총대를 메다’가 아니라, ‘총대를 맡다’ ‘총대가 되다’ ‘총대를 하다’ 등이어야 한다. 우리가 한자를 상용하지 않게 되면서 생긴 대표적인 오용 예의 하나이다. 세간에서 잘못 쓰는 말을 고착시키는 것에 글 쓰는 이들의 책임이 크다. 앞으로는 제발 총대를 메지 말고, 맡기 바란다.
김영식 작가/번역가(일본근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