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생님들께,
오늘이 입동이지요.
겨울의 시작, 立冬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오늘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에 가깝습니다. 이제 슬슬 겨울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요?
며칠 전 화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가천대 자원봉사동아리 학생들이 봉사활동 답사로 샛강에 왔어요. 요즘 한강의 조경관리사 선생님들이 정성을 쏟는 도랑 옆 비밀 정원 같은 곳으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최근 자원봉사자들이 오솔길을 따라 나무심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샛강 숲의 나무들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 굵지 않은 버드나무 옆에 까만 털의 개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저희가 풀을 정리하여 나무 사이로 평평한 땅이 드러난 숲에서, 개가 영문도 모른 채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몇 발짝 다가가니 개 앞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밥그릇과 물그릇이 각각 놓여 있었습니다.
쇠줄에 묶여 있는 개는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낮은 소리로 컹컹 짖으며 뒤로 물러섭니다. 개의 눈에 두려움이 스칩니다. 개가 이리저리 몸을 피하자 쇠줄이 철겅철겅 차가운 소리를 냅니다.
주인이 버린 개로구나. 직감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종일 분주하게 일을 하면서도 개가 머릿속에 어른거렸습니다. 유기견보호소에 신고한다고 해도 저 개의 운명은 한달 남짓 아닐까, 데리고 있을 방편을 없을까, 주인이 뉘우치고 돌아오지는 않을까… 저 개는 샛강에 온 개이니,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노자’라고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행복한 노자가 되었으면 했지요.
수요일 아침에도 개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밤이슬에 젖은 사료는 눅눅하고 좀 먹었는지 땅바닥에 떨어져있기도 했습니다. 묶인 자리에서 똥을 쌌는지 개 등 위로 똥파리들이 사납게 날았습니다. 저희 용태 연구원이 삽을 들고 나가 똥을 파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염대표는 한강의 조합원이시기도 한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구조해주겠다고, 목요일 아침에 온다고 해주었습니다. 노자가 잔뜩 경계하고 있었고, 두려워하기에 그 자리에 두고 돌아왔습니다. 수요일 밤에 유난히 춥게 느껴졌습니다. 입동이 멀지 않았으니까요. 밤새 추위와 외로움에 떨었을 노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종종거렸습니다. 그렇게 또 아침이 밝았습니다.
목요일 아침 샛강 숲 버드나무, 오솔길에서 몇 걸음 들어간 그 자리에 노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그릇과 물그릇은 그대로인데 노자도 사라지도, 쇠사슬도 없었습니다. 똥을 치워주러 삽을 들고 나섰던 염대표는 망연히 그 빈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샛강 물이 흐르는 곳까지 숲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주인이 개심해서 데려간 걸로 믿읍시다.”
그는 삽을 들고 더러워진 사료를 묻었습니다. 구두에 양복 차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흙을 파고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조금 더 뭔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노자가 잘 살기를, 주인에게 돌아갔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철새들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장항습지에는 큰기러기 떼가 해질녘 군무를 추고, 재두루미들도 왔습니다. 하여 선생님들을 장항습지 철새 기행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11월 23일 토요일에 저희와 함께 철새를 보고 평화를 꿈꾸는 행복한 여행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란 소설집에 첫 수록작이 ‘입동’입니다. 아이를 잃은 부부가 서로 상처를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춥고 어두운 날들일수록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올해도 잘 마무리하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한강조합 사무국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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