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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축제의 성공을 위하여

푸른하늘김 2019. 9. 9. 10:09

 

 

지역축제가 잘되려면/ 윤광준 (사진작가)

 

독일 바이에른주 북쪽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에는 해마다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바그너의 음악을 즐기는 바이로이트축제가 열려서다. 나도 그 자리에 있다. 막상 와서보니 바이로이트 시내는 의외로 평온하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요란한 장식물로 뒤덮인 거리 모습을 연상해서일까. 세계적 규모의 축제를 기대했다가 잠시 실망했다. 반전은 이제부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뜨겁게 펼쳐지는 축제가 있었다. 바이로이트는 도시 전체가 바그너와 연관된다. 말년의 집은 박물관이, 묘지는 ‘바그네리안(바그너의 팬을 뜻하는 말)’의 성지가 됐다. 거리 곳곳에 동상이 서 있어 바그너가 현재에도 살아 있는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내엔 바그너의 거리도 있다. 작은 길엔 ‘뉘른베르크 명가수’의 길, ‘파르지팔’의 길 등 작품의 이름이 붙어 있다. 카페이름 또한 바그너의 작품 속 내용에서 따온 것이 많다. 동네 책방은 바그너와 연관된 도서뿐 아니라 CD도 풍부하게 준비해두었다. 바그너의 음악과, 여기에서 파생된 문학과 연극이 망라돼 있다. 도시 전체가 바그너를 추앙하는 듯하다.

 

음악회는 기본이고 세미나와 연극무대도 많다. 광장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댄스파티가 열린다. 연예인을 동원하지도, 어마어마한 음향시설을 갖추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시민들 스스로 참여해 춤을 즐긴다. 젊은 커플도, 늙은 커플도, 동성 커플과 혼자 추는 사람들도 즐거움을 공유한다. 바그너가 깔아놓은 판을 시민들이 다채롭고 풍요롭게 발전시켜 지금의 바이로이트축제를 만들어냈다. 시간을 더해 단단해진, 모두의 축제는 쉽게 흔들리는 법이 없다. 거리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편안하다. 멋진 의자와 테이블이 갖춰져 있다. 맛있고 좋은 음식은 기본이다. 노천카페에 앉아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도 좋고, 대화와 토론을 나누기에도 좋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며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이 동네에서 만드는 마이셀맥주를 마시며 흥겹게 취하는 시간이 각별해진다.

 

축제기간 내내 도시 전체의 숙박 가능한 호텔과 아파트들이 가동된다. 바이로이트엔 눈에 띄는 큰 호텔이 없다. 시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위해 새로운 시설을 만들 마음이 없어 보인다. 여름시즌만을 위해 무리한 시설확장을 하지 않는 게 이들의 합리성이다. ‘축제의 내용이 훌륭하다면 관광객은 숙소의 불편 정도는 참게 된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동네의 주인공은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인 것이다. 축제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시민들은 우리식의 바가지요금을 물리지 않는다. 바이로이트축제는 바그너를 좋아하는 전세계 사람들의 흥겨운 잔치였다. 1500여개가 된다는 우리의 지역축제가 볼 것 없고 불편한 이유를 알았다. 우선순위는 지역경제 활성화란 목적보단 안에 담아야 할 내용의 충실함이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탄탄한 이야기와 볼거리·즐길거리를 먼저 챙겨야 한다. 무엇이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는지, 초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잡상인이 들끓고 급조된 음식이 즐비하며 똑같은 연예인의 노랫소리가 반복되는 축제를 더이상 흥미롭게 바라볼 이들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