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74주년을 기리며]
박홍석
무섬마을은 전국 단일 마을 중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다.
'아세아 반도 내 수도리의 서당' 이란 뜻의 아도서숙 ‘亞島書塾’을 1928년 10월 해우당 김낙풍의 증손자 김화진 등 마을 청년이 뭉쳐 세웠다. 마을 공회당이자 교육기관이었다.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모여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문맹퇴치와 농촌계몽활동, 민족교육 등을 했고, 신간회 영주지회와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 등의 사무실로 지역 항일운동의 구심점이자, 농민운동 및 반제운동 비밀 결사인 적색농조의 거점이었다.
4차례의 거센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항일 운동을 이어나가던 중, 1933년 7월 11일 새벽 일제는 경찰 1개 소대로 마을을 에워싸고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모두를 연행했다. 이때 아도서숙은 강제로 문을 닫았다.
당시 항일 운동을 하던 투사 중 5명(김화진, 김종진, 김계진, 김성규, 김명진)은 건국훈장 애족장 및 건국포장에 추서되었고, 서훈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옥고를 치른 (박찬상, 박찬하 등 많다.
사라졌던 아도서숙은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사료를 모아 철저한 고증을 통해 2015년 복원했다.
아도서숙 앞 마당에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수포를 깔기도 했으나 현재는 방수포 없으나 풀이 무성하다. 역사성을 알리는 안내판과 마당 관리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