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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수안보 온천 여행기

푸른하늘김 2012. 11. 20. 23:10

 

김수종의 수안보 온천 여행기

-겨울에는 역시 온천여행이 최고지

 

 


지난 2012년 11월 17일 친구들과 충북 충주의 ‘수안보’로 온천여행을 다녀왔다. 참 오래된 이야기지만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는 충주의 수안보나 창녕의 부곡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서울 사람들이 난지도나,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말이다. 나도 어느덧 어린 시절 이모랑 고모가 부곡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기념품으로 사온 수건이며, 장식품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집집마다 목욕탕이 있고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하는 시대가 되어 아련한 기억 속에 온천여행에 대한 추억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예전 일본유학 시절 ‘료칸(여관, 旅館, りょかん)’에서 온천을 즐긴 적이 있는데 작고 아담한 일본식 정원과 노천온천이 있고 식사는 코스별로 나오는데 그 정취를 잊을 수가 없어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런 온천문화는 없고 그냥 숙박시설인 호텔에서 잠을 자고 사우나와 노천탕 정도의 시설에서 목욕을 하고, 식사는 호텔 내 뷔페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밋밋하고 멋없는 온천여행의 일반적 형태가 되었다.

 

이러니 정겨움과 쉼의 문화가 없어 더 이상은 가족여행으로 온천에 가는 것이 불가능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가끔 온천이 그리울 때면 친구들과 날이 추워지는 겨울에 한두 번 당일치기로 훌쩍 온천을 찾는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워터파크가 있거나 가족들이 공동으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경우 자주 찾게 되지만,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통상 집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서 몸을 푸는 것으로 목욕과 휴식을 겸하게 된다.

 

아무튼 이번에 수안보온천에 간 것은 오랜 만에 온천욕도 하고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수안보온천은 유황 라듐천으로 불소와 규산 함량이 높고, 수소이온농도(pH)가 8.4∼8.7정도인 약알칼리성온천으로 수온도 53℃나 되어 뜨거운 편이다.

 

예전부터 혈액순환 및 이뇨작용 촉진, 관절염 및 신경통, 류머티즘, 피부병, 위장병, 부인병. 스트레스 해소, 피로회복, 주름살 억제와 노화지연, 면역력 증대 등에 효과가 있고, 불소가 함유되어 있어 충치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유명한 온천 관광지다.

 

또한 온천수 보호 및 원활한 공급을 위해 대형저장탱크를 설치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가 관할하는 중앙집중공급방식으로 온천수가 각 온천장으로 공급되고 있어 확실한 수질관리가 특징이다.
 
아울러 충주에는 중부내륙최고의 휴양지인 수안보온천을 포함하여 3곳의 온천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탄산온천으로 알려진 앙성온천과 조령산 월악산 수주팔봉 중간에 있는 문강유황온천이 그것이다.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혼자 승용차를 가지고 간 관계로 수안보 중심에 있는 ‘물탕공원’에 도착하여 잠시 족욕을 했다. 봄, 여름, 가을에 무료로 이용한 가능한 족욕장은 성큼 겨울이 다가와서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지만, 잠시 족욕을 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20분 쯤 족욕을 하고 나니 친구들이 몰려와 10분을 더했다. 날씨는 추운데 물은 약간 시원한 정도라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발을 닦고는 물탕공원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수안보파크호텔’에 있는 사우나와 노천온천으로 이동했다.

 

한국도자기가 운영하는 호텔이라 그런지 로비와 곳곳에 도자기 홍보를 위한 매장, 장식 및 설치물 등이 많았다. 수영장과 농구코트, 테니스코트, 족구장 등의 운동시설과 양식당, 한식당,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연회장 등이 있어 무척 좋았다. 이곳을 자주 찾는 친구가 있어 우리들은 사우나와 노천온천을 즐기기 위해 갔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너무 조용하고 좋았지만, 생각보다 시설은 낡고 노천탕도 좁았다. 내 생각에 30년 정도 전에 건축한 호텔을 오랫동안 수리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물은 무척 좋았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우리 일행은 조용한 맛에 행복하게 온천욕을 즐기고는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 아래 산책로를 따라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산책로는 나름 멋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내려오는 길 가운데 ‘성봉채플’이라고 하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모양은 성당의 형태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호텔주가 유명한 부흥사인 故 이성봉 목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주로 직원들과 호텔 내방객을 위해 주일에만 목사님을 초빙하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고 한다. 간혹 결혼식장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이곳의 자태가 학이 날개를 펼친 듯 멋스러워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점심식사는 온천리 있는 산채전문점인 ‘청솔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먹었다. 나는 여러 가지 산나물과 두부 전, 황태구이가 너무 좋아 과식했다. 수안보에는 산채요리와 보양식으로 유명한 꿩요리가 잘 알려져 있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이웃에 있는 196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름다운 ‘수안보성당’을 잠시 둘러보았다.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이 건립한 성당으로 붉은 색 벽돌이 멋진 곳이었다.

 

약간 언덕이 자리하여 건물이 무척 크게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웅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이라 고풍스러움이 넘쳐났다.

 

중앙경찰학교가 인근에 있어 경찰관과 지역 주민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라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성당에서 수안보의 전경까지 살펴본 우리들은 문경과 경계선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개인 ‘하늘재’로 이동했다.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있는 하늘재와 미륵대원지

 

 

월악산 ‘하늘재(寒喧嶺)’는 문경 관음리와 충주 미륵리의 경계에 있다. 예전에 계립령(鷄立嶺), 대원령 등으로 불렸던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다. 신라의 아달라 이사금이 북진을 위해 개척(156년)하여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되었다.

 

고구려 온달장군과 평원왕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다. 또한 망국의 한을 안고 살았던 신라의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가 넘었던 길이기도 하다. 여기에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나 조선 태종 때 문경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중요성을 서서히 잃었다. 임진란 이후 다른 통행로가 폐쇄된 뒤 오랫동안 행인들의 왕래조차 없어졌다.

 

인적이 없던 오랜 세월만큼 길 양쪽에는 개울과 함께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문경 쪽에서 오르는 길은 고갯마루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포장을 해 놓았으나 수안보 쪽 미륵리 길은 좁은 소로에 비포장이라 멋스럽고 운치가 있다.

 

따라서 하늘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안보 미륵리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30~40분 정도를 걸어서 오른다. 최근 ‘연아를 닮은 나무’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고갯마루까지 길이 완만하여 어린이를 동행한 가족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여기에 미륵리 입구에 있는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는 불교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재로 학습에도 도움이 되는 곳이다. 지명으로 보자면 문경의 관음리는 현세의 기복을 비는 관세음보살을 상징하고, 충주의 미륵리는 미래의 복을 비는 미륵불을 의미하는 곳으로 명칭만으로도 불교와 관계가 깊은 곳이라고 짐작이 가능하다.

 

늦가을 단풍을 보면서 맑은 숲 공기를 마시며 하늘재에 올라 서편에 있는 대미산이라는 바위산을 바라본다. 해발 1,115M로 높기도 하지만 웅장하기도 하다. 언덕 위에 있는 ‘백두대간 하늘재’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 문경 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늘재 산장에서 부추전과 ‘문경의 아침 생막걸리’로 입가심을 했다.  

 

약간 술에 취해 내려가는 길은 더 편하고 쉬웠다. 천천히 걸어 내려와 미륵대원지를 둘러보았다. 미륵대원지는 하늘재와 문경새재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절터이다.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식(石窟式) 법당의 중앙에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했다. 측면과 후면 석벽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을 부조하여 장식했다.

 

상부에는 목조건물을 지어 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목조 구조의 반축조(半築造) 석굴사원이다.

 

절터 안에는 오층석탑(보물 95), 석불입상(보물 96),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유물이 있다. 특히 귀부는 그 크기도 웅장하지만, 왼쪽 등 위에 새끼 거북 두 마리가 조각되어있어 저절로 환한 웃음이 나온다.

 

절터는 전반적으로 북쪽으로 지형이 낮아짐에 따라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하여 사원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라고 한다. 목조 건물이나 목탑 등이 전부 사라진 것이 너무 아쉽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했다고 전한다.
 
아무튼 웅장한 석불입상을 감동적으로 살펴본 우리들은 차를 타고 ‘수안보 양조장’으로 가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월악산온천명주 생막걸리’를 한잔했다. 요즘 보기 드문 100% 밀가루 막걸리로 그런대로 맛이 있어 서울에서 마시려고 4병을 샀다.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로 요기를 한 우리들은 수안보온천문화의 발원지로 알려진 ‘수안보온천랜드’로 가서 숙소를 정한 다음 다시 욕천욕을 했다. 친구들은 이왕 온 김에 1박을 더하고 간다고 하는 숙소를 정했지만, 나는 일이 있어 급히 샤워만 하고는 서울로 향했다.

 

벌써 불을 밝힌 ‘루미나리에’ 불빛을 보면서 서울로 향하는 길은 왠지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도 오랜 만에 온천을 두 번이나 했더니 정말 몸이 개운하고 좋다. 며칠 동안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을 보면 역시 겨울에는 온천여행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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