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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나주 여행기

푸른하늘김 2012. 10. 11. 23:59

 

김수종의 나주 여행기

 

볼 곳 많은 전라도 나주에 가다


 

올해는 연속되는 태풍으로 인해 남도지역에 피해가 심했다. 지난 2012년 9월 18일(화)~19일(수) 전라도 나주에서 배와 단호박 농사를 짓고 있는, 태풍피해를 많이 본 노총각 성수를 만나고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과 잠시 나주에 다녀왔다.

 

태풍으로 배는 거의 낙과를 했고, 다행히 단호박은 평년작은 된다고 한다. 혼자 농사를 짓고 있는 성수는 상당히 낙심을 하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오랜 만에 방문한 친구들과 즐겁게 이틀을 보냈다.

 

서울의 사당동에서 자가용으로 4시간을 가니 성수가 사는 나주시 산포면이다. 아침에 출발을 했지만, 나주에 당도하니 벌써 식사 때가 다 되었다. 성수는 점심으로 나주 특산품인 홍어를 먹자고 했다.

 

나는 “경상도 촌놈이 무슨 홍어야? 나주에 장어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장어 먹자”고 우겨 산포초등학교 앞에 있는 장어구이전문점인 ‘산포제일장어’집으로 갔다.

 

나주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이라 장어가 무척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의 강한 주장이 관철되어 일행은 몸보신도 할 겸 장어소금구이를 먹은 것이다.

 

양식장도 겸하고 있는 곳이라 1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장어3마리를 구워먹고는 장어탕을 한 그릇씩 더 먹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솜씨로 장어를 굽고 소금을 뿌리고 뒤집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 맛나게 장어를 먹었다.

 

추가로 조금 더 장어를 먹으려고 했더니, 주인양반이 신 새벽에 사냥 가서 직접 잡은 산돼지고기라며 2인분 정도의 고기를 서비스로 주어 후식은 산돼지구이로 먹었다.

 

나는 너무 배가 불렀지만, 같이 갔던 친구들은 무척 배고팠던지 장어탕을 추가로 시켜 더 먹고는 커피를 한잔 하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는 나주까지 온 김에 성수의 농장으로 가서 배 밭과 단호박 농원을 둘러보려 했지만, 한사코 “그냥 관광이나 하고 즐기고 가라”는 성수의 만류에 일단은 나주를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성수는 오는 10월 5일부터 29일까지 전라남도가 주관하는 ‘2012국제농업박람회’가 나주에 있는 전남농업기술원 중심으로 하는 100만평이 넘는 터에서 열린다며 잠시 이곳을 둘러보자고 했다.

 

아직 행사 준비로 바쁘고 어수선했다. 하지만 지역의 농민들은 물론 관민들이 일치단결하여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관계로 둘러 볼 곳이 많다고 하여 인근의 박람회장으로 갔다.

 

차를 타고 2분 정도를 가니 바로 행사장이다. 개막까지는 아직 보름 정도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어수선하기는 했다. 그러나 한창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나 조경과 함께 나무와 풀, 꽃을 심고 옮기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외지인이 행사장 전부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수가 대학 졸업 직후 나주로 귀농하여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어서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열대식물원, 농업예술관을 볼 수 있었다. 아직은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생명농업관과 농업미래관은 외부에서 잠시 살필 수 있었다.

 

한국 유기농산물의 60%를 생산하는 나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도에서는 매년 국내용의 농업박람회를 열었다.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좀 더 규모를 늘려 20개국 250개 업체가 참가하는 국제규모의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고 관람객 105만 명을 목표로 준비에 바쁘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감동을 받는 곳은 열대식물원으로 대형 온실 속에 열대밀림을 재현해 놓은 것이 바나나, 구아바, 레몬 등 열대과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아직은 넝쿨식물을 혼합하여 심어서 한 나무에서 여러 가지 과일이나 채소가 열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미래에는 실재로 한 나무에 수십 개의 과일과 채소가 열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상의 모습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했다.

 

워낙 넓은 땅이라 두어 시간을 둘러보았지만, 반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10월초 박람회 본행사가 열릴 때 다시 오는 것으로 기약을 하고는 이웃의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로 이동했다.

 

이곳은 지난 8월말 ‘대한민국산림박람회’가 열렸던 곳으로 전체가 600~70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고, 숲 유치원, 나무병원, 산림학교, 산림 요가원, 숲속도서관, 산림 휴양관, 산약초건강음식관, 난대수목원, 숲속공연장, 숲속 물놀이 체험장, 산림예술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 종합수목원에 연구소였다.

 

우리들은 한 시간 넘게 이곳을 산책하면서 단란한 가족여행을 꿈꾸었다. 나도 10월에 나주에 다시 오게 되면 집사람과 아들 연우와 함께 소풍 온 기분으로 이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입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담양의 길보다 더 운치가 있고 당당하고 멋졌다.

 

참 멋지고 좋은 수목원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우리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서 이웃한 다도면 풍산리(楓山里)에 있는 ‘도래전통한옥마을’로 갔다. ‘도천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마을의 맥이 세 갈래로 갈라져 내 천(川)자 형국을 이루는 까닭에 도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마을은 조선 중종 때 풍산홍씨(豊山洪氏) 홍한의가 기묘사화를 피해 정착하면서 풍산홍씨 집성촌이 되었다.

 

조선후기 사대부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전형적인 한옥마을로, 예전에는 가구 수가 100여 호나 될 만큼 규모가 컸다. 마을 뒤편 주산은 군사가 사흘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는 산이라 해서 이름이 식산(食山)이다. 마을 앞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전체 경관이 빼어나다.

 

마을 입구에는 공동 정자와 연못 등이 있고, 정자 입구에 있는 2층 효자문 역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가옥은 기와집과 초가로 이루어져 있고, 집들 사이로 돌담길이 나 있어 옛 길의 정취를 흠씬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건물은 종가인 홍기응 가옥(중요민속자료 151)을 비롯하여 홍기헌 가옥(중요민속자료 165), 홍기창 가옥(전남민속자료 9), 홍기종 가옥(전남민속자료 10)을 들 수 있다.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진 근대가옥으로, 원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구한말 근대 건축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도천마을은 마을회지인 ‘도천동지(道川洞誌)’를 만들 만큼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마을로, 지금도 절기마다 마을잔치가 열린다.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 선생의 선대가 이 마을에 살다가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충북의 홍봉한 선생 집에 양자로 간 일화도 남아 있는 곳이다.

 

나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으로 마련된 ‘도래마을옛집’과 종택인 홍기응 가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특히 관리인이 상주하면서 민박을 겸하고 있는 도래마을옛집은 1936년에 지어진 일제강점기의 근대한옥으로 안채와 사랑방 공간에서 근대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이 옛집을 보전대상으로 지정, 2006년에 문화유산기금 1억 원으로 매입하였으며, 복권위원회 복권기금 6억 원을 들여 보수했다. 이 옛집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 이어 시민문화유산 제2호가 된다.

 

뒤편에 있는 홍기응 종가는 사랑채와 본채는 비어있는 듯했지만, 뒤채에는 주인이 살고 있는지 빨래가 걸려있고 인기척도 들렸다. 사당도 갖추고 있어 조선 사대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전체적으로 10여 채의 한옥이 남아있고 20~30채 정도는 개량되거나 양옥으로 지어져 있어 예전의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 볼 것이 많은 고즈넉한 시골마을이었다.


 

 

천년 나주목의 숨결 속을 거닐다

 

 

 

나주의 ‘도래전통한옥마을’을 둘러 본 우리들은 입구에 있는 연못가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삼영동에 위치한 한식전문점인 ‘대지회관’으로 이동했다.

 

전라도에서 가장 놀라는 것은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 그런지 별로 비싸지 않은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반찬이 무지 많다는 것이다. 채 1만원도 되지 않는 정식을 부탁했는데, 반찬이 무려 20가지 정도나 된다.

 

홍어회 무침을 비롯하여 굴비, 콩나물 무침, 멸치조림, 잡채, 부추무침, 김, 버섯, 오이무침, 양념게장, 돼지고기 두루치기, 된장국, 가지무침 등등 너무 많다. 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어 아주 잘 먹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식당에 가면 죄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우선 밥과 반찬을 지나치게 많이 주어서 늘 남기는 것이 죄스럽고, 굶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불안한 것은 도저히 비용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과 함께 남은 음식이며 반찬을 다시 사용할 것 같다는 의심스러운 불안감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조금씩 나오는 식당이 난 좋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차를 타고 성수의 집으로 갔다. 오랜 만에 방문한 성수의 집에서 우리들은 차를 한잔 한 다음, 맥주와 안주를 사와서 술로 회포를 풀었다. 성수는 요즘 어려운 농촌 현실과 올해 파장한 배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풍수해 피해를 입고 나면 남은 농산물이라도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하는데, 이건 도시민들 살리겠다고 수입농산물로 대체를 해 버리니 농민은 언제나 힘들고 농산물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값이 똑같다”라고 푸념하는 성수의 말을 들으면서 욕을 안주삼아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한잔 한 우리들은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9일(수) 아침 6시도되기 전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는 바로 나와 ‘영산포(榮山浦) 홍어의 거리’로 갔다. 예전에 한번 갔던 곳인데, 홍어 냄새도 그립고 주변 풍광이 오래된 미래를 보는 느낌이 들어 다시 찾았다.

 

원래 흑산도의 특산품인 홍어가 나주에서도 유명하게 된 것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 고려 말 왜구가 흑산도 지역에 자주 출몰하여 피해가 잦자, 정부는 공도 정책을 펴서 주민들을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때 흑산도 주민들을 따라 홍어도 나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5일 이상 걸리고 지금처럼 냉동 보관하는 기술도 발달하지 못하여 운송 도중에 홍어가 상하였으므로 나주에서는 홍어가 삭혀 먹는 음식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나주 홍어의 거리에는 전문 음식점과 도소매점 수십 곳이 늘어서 있으며, 전통음식문화의 거리로 조성되어있다. 매년 4월에 홍어축제가 열릴 때면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홍어의 거리를 둘러 본 우리들은 선창에 있는 ‘영산포 등대’를 보기 위해 잠시 걸어갔다.

 

1915년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국내 유일의 강에 있는 등대인 영산포 등대는 지난 2004년 등록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등대 기능과 함께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측정도 겸한 시설이다. 등대는 영산대교에 새롭게 수위측정 시설이 생긴 지난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나주의 영산포는 일제강점기에 해상교역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호남선 철도 개통 이듬해인 1915년에 등대를 건립한 것으로 보아 일제가 영산포를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의 수탈거점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당시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기본 틀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사료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치형 지붕 위의 조명장치 등과 주변 시설물은 많이 변해 있다. 등대에 접근하려면 철사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시원한 가을 강바람을 맞으며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홍어의 거리와 등대 및 포구 일대를 둘러 본 우리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나주가 자랑하는 먹을거리인 ‘나주곰탕’을 먹기 위해 금계동에 위치한 ‘남평할매집’으로 갔다.

 

나주에서 정말 유명한 곰탕집 가운데 한 곳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별로 맛에 감동받지 못했다. 우선 곰탕에 너무 많은 파가 들어있어 육수 맛을 가렸고, 계란 고명을 올려 고명을 먼저 먹고 나니 고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어 역시 국물 맛을 정확히 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화학조미료의 맛도 조금 있어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냥 고기와 국물만을 담은 곰탕을 내고 파와 계란고명, 고춧가루를 따로 주면 기호에 따라 추가하여 먹으면 되는데, 순수한 국물 맛에 자신이 없다는 느낌만 주어 아쉬웠다.

 

이웃집으로 가는 건데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모두가 식사는 마친 상태다. 아침 후 우리들은 옆에 있는 ‘나주목사내아(羅州牧使內衙)’ ‘금학헌(琴鶴軒)’으로 갔다. 나주 옛 동헌에 딸린 살림집인 내아는 실제로 1980년 후반까지 나주 군수의 관사로 쓰이던 곳이다.

 

‘금학헌’이라는 이름은 ‘거문고의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자 하는 선비의 지조가 깃든 집’이라는 뜻으로 1986년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나주 동헌의 정문인 정수루(正綏樓)에서 서쪽으로 약 65m 되는 곳에 있던 동헌 바로 뒤편에 정남향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주의 관아 건축물은 객사인 금성관과 동헌 정문인 정수루, 살림집인 내아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나주내아는 일반적인 내아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건물은 ‘ㄷ’자형 평면으로 된 팔작지붕이다.

 

현재 본채와 문간채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간채는 본채와 20m의 거리를 두고 전면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은 전퇴를 둔 5칸으로 왼쪽에서부터 대청 3칸과 그 밖의 여러 곳은 크게 고쳐서 원래의 형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손님 접대가 많았던 탓에 부엌이 3개나 되는 것이 특징이다. 기단은 현재 모르타르로 마감되어 있고 주춧돌은 막돌을 사용했다. 기둥은 정면에만 원형을 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했다.

 

정면의 퇴주 위로만은 창방을 걸고 그 위로 소루(小累)를 기둥 사이마다 3구씩 배치했다. 가구(架構)는 정면 중앙으로 1고주 5량, 양 날개 쪽은 4량 형식으로 꾸몄다. 처마는 앞쪽은 겹처마로, 뒤쪽은 홑처마로 되어있다.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안채 상량문에 1825년(순조25년)에 상량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문간채가 1892년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군수 관사로 사용하면서 여러 번 수리하여 원형을 많이 잃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관아 건축물로 중요한 역사자료임에는 틀림없는 건물이다.

 

마당 우측 구석에 소원을 들어주는 생명력이 강한 500년 된 벼락 맞은 팽나무가 있어 남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금학헌은 지난 2009년부터는 숙박체험공간으로 쓰이고 있으며, 인의예지의 네 개의 방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나주목사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과 김성일의 이름을 딴 방은 터가 좋다가 하여 맑은 기운을 얻어 소망을 이루는 방이라고 하여 인기가 높다.

 

나도 연우의 겨울방학 때 쯤,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탐나는 멋진 한옥이다. 참 햇살이 좋은 가을날 운치 있는 한옥 마당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나주객사, 금성관을 보며 역사와 숨결에 취하다.


 

‘나주목사내아’를 경이롭게 둘러 본 우리들은 인근의 나주목 동헌의 정문인 ‘정수루(正綏樓)’를 보기 위해 잠깐 움직였다. 정완루라고도 부르는 나주목관아의 정문인 정수루는 전남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어있는 폼나는 건물이다.

 

조선 선조 36년 나주 목사로 부임한 우복룡이 시작(詩作)과 풍류를 즐기고자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아침이면 이곳 문 앞에서 의관을 다시 정비했다고 한다.

 

현재 나주에는 동헌이었던 ‘제금헌(制錦軒)’이 일제강점기 어디론가 팔려가 흔적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문인 정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멋지게 남아있다.

 

정수루는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열린 구조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낮은 원형이다.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고 2층 바닥에 장마루를 깔았다. 2층의 기둥 위에 주두를 놓아 창방을 걸었다.

 

천장은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그 외에는 연등천장으로 만들었다. 양 옆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 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화려한 용머리 장식으로 치장했다. 왼쪽의 용은 여의주가 없고 오른쪽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큰 북과 가로 158㎝, 세로 55㎝ 크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큰 북은 1583년~86년까지 재임한 학봉 김성일 목사가 민정이 막히는 것을 막고자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처음 걸어 둔 것이다. 학봉 선생은 나주 목사로 재임할 당시 명판관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원통한 일을 하소연 할 자는 누구든 북을 쳐라” 라고 할 정도로 민의를 잘 수렴한 원님으로 알려져 있다.
 
북은 오랫동안 시간을 알리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었다. 지금의 북은 1986년 나주시에서 다시 설치한 것이다. 일제가 길을 내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누문이 통로로 사용되어 왔고, 명절 때는 행사의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정수루 바로 옆에는 예전에 금남동사무소 건물로 쓰이기도 했던 ‘나주목문화관(羅州牧文化館)’이 있다. 고려 조선시대 나주목의 천 년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운 문화관이다.

 

나주는 멀리 고려 성종(983)때부터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주목이 유지된 곳이다. 나주목문화관은 지난 2006년 개관했다.

 

지방행정단위였던 ‘목(牧)’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종 조형물과 사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향나주 목이 되다’ ‘나주목사 부임행차’ ‘나주읍성 둘러보기’ ‘관아 둘러보기’ ‘다시 태어나는 나주’ 등 8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20명에 이르는 목사들의 명패와 목사의 하루 일정 등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한양의 모습과 흡사한 나주읍성의 모형은 감탄을 자아낸다. 동서남북에 산이 있고 4개의 대문과 서울의 청계천을 연상하게 하는 나주천이 중앙을 가르는 모습은 나주를 ‘소경(小京)’이라고 불렀던 연유를 알게 하는 모형이다.
 
나주목문화관을 본 다음, 일행은 ‘나주객사’라고도 불리는 ‘금성관(錦城館)’으로 갔다. 금성관은 한 달에 두 번 한양에 있던 임금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제를 올리던 곳이다. 양 옆에 있는 서익헌과 동익헌은 외국사신이나 중앙에서 출장 온 관리들이 머물던 요즘으로 보자면 최고급 국영호텔이다.

 

금성관은 내용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추어 건축한 이 건물은 조선 초 이유인 목사가 건립한 것으로, 선조 36에 크게 중수하였고, 고종 21에 박규동 목사가 또다시 중수했다.

 

금성관의 규모는 한양에 있는 궁궐 정전과도 비슷할 정도로 크기도 크고 웅장하다. 금성관이라는 앞면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금성관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는 건물의 일부를 개조하여 군청 청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1963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겹처마집으로, 외일출목(外一出目)의 주심포양식을 이루고 있는데, 정면 중앙 3칸은 네 짝의 빗살문을, 양쪽 협간에는 두 짝의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 또한 빗살창문으로 중앙 2칸은 네짝 문이고, 양쪽 1칸에는 두 짝을 달았다. 크기도 대단하지만 대청이 넓어 행사장으로 쓰기에도 무척 좋았을 것 같아 보인다.

 

금성관 전체는 최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좌측에는 종3품 이하의 하급관리들이 머물던 서익헌과 우측에는 정3품 이상의 고급관리들이 머물던 동익헌을 다시 지었다. 특히 동익헌은 육관대청의 큰 마루와 방을 갖추고 있어 그 웅장함과 크기가 대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우측에는 십여 개의 공덕비와 뒤편에는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그리고 우측 담장 옆에 있었다는 육방 관속 등의 집들은 현재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나주시는 복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나주객사를 둘러 본 우리들은 다시 차를 타고 공산면 신곡리에 위치한 ‘나주영상테마파크’로 갔다. 단일 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드라마 촬영장인 이곳에서는 ‘주몽’ ‘이산’ ‘바람의 아들’ ‘태왕사신기’ 등 인기 드라마가 촬영되었고, 현재는 ‘신의’ ‘전우치’ 등을 찍고 있다고 한다.

 

내부는 부여와 졸본부여의 왕궁을 중국 황궁의 모습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하게 재현해 두었고, 권력의 중심을 담당하였던 제사장이 활동하던 신단과 당시 최고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였을 철기무기제작소인 철기방 등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난 개인적으로는 세트장 맨 뒤편에 있는 전망대에 바라본 영산강과 나주평야의 전경이 무척 좋았다. 황포돛배를 타는 곳도 보였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배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돌아서 나왔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삼족오의 비상’이라고는 하는 김숙빈 선생의 조각을 보면서 너무 감동을 받았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모습과 현대의 로보트 태권브이를 결합한 형태의 조각으로 우리 민족의 기상과를 미래를 표현한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나주시내로 나와 남내동에 있는 나주문화원장과 전남도의원을 지낸 ‘박경중 선생의 고택’ 사랑채를 이용하여 한식당을 하고 있는 ‘사랑채’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반찬도 깔끔하고 맛도 좋아서 정말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인근 커피 전문점에서 맛있는 아메리카노로 졸음을 쫒은 다음, 일행은 다시 금성산 중턱 경현동에 위치한 ‘다보사(多寶寺)’로 이동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인 다보사는 661년(신라 태종무열왕 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금성산에서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스님이 땅에서 솟아난 칠보로 장식된 큰 탑 속에서 다보여래가 출현하는 꿈을 꾼 뒤 사찰을 창건했다 하여 다보사라고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작지만 학승들의 정진도량으로 이름이 놓은 곳이다. 아울러 깨끗하고 맑은 물이 많은 계곡이 너무 좋고 상사화 등의 꽃이 수없이 피어있고, 700년 된 보호수인 팽나무와 가을에는 단풍이 예뻐 이곳을 찾는 신도와 관광객 또한 무척 많다고 한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선방(禪房)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다보사는 좁은 골짜기 지형 속에 들어앉아 사방이 울창한 숲과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수려한 경관이 좋은 곳이다.

 

특히 볼거리가 많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전각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실내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 보현의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정면 3칸 문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쌍여닫이 빗꽃살문이 설치되어있다. 문살에는 국화, 매화, 모란 등의 문양이 정교하고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어 매우 아름답다. 다보사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보고 와야 할 멋진 문창살이다.

 

대웅전 앞으로는 석등, 부도, 5층 석탑, 우화당 대선사비, 진상화상 창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또 다른 볼거리였던 보물 1343호 '괘불탱(掛佛幀)'은 현재 나주시 향토문화회관으로 옮겨져 있다.

 

아울러 절 입구 사천왕문은 기존 절의 경우 사천왕 4명이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지만, 이곳의 경우 어린 동자승 둘과 전혀 무섭지 않은 사천왕 둘이 서 있어 첫 방문자도 두려움 없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좋다.

 

급하게 다보사까지 둘러 본 우리들은 성수를 집까지 바라다 주고는, 10월 초순에 2012국제농업박람회장을 다시 찾기로 약속을 하고는 서울로 향했다. 무척 즐겁고 재미난 나주 여행이었다. 


 

대박 난 나주의 국제농업박람회

 

 


지난 10월 5일(금) 당일치기로, 나주에서 10월5일에서 29일까지 열리는 ‘2012 국제농업박람회’행사장에 다녀왔다. 얼마 전인 9월 중순, 현지에서 배와 단호박 농사를 짓는 성수와 함께 방문하여 미리 둘러본 곳을 다시 찾은 것은 개막일에 맞추어 본 행사를 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나주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입장 전에 삼영동에 있는 ‘대지식당’에서 간단하게 된장국과 굴비구이가 나오는 정식으로 식사를 하고는 바로 행사장으로 갔다.

 

7,000원의 입장료가 조금 비쌌다. 그러나 행사장 전체를 부리나케 둘러보면서 너무 볼 것이 많아 별로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천천히 보면 하루 종일 보아도 전부 보는 것이 힘들 정도로 다양한 먹을거리, 볼거리가 많았다.
     
국제농업박람회가 열리는 나주시 산포면의 전남농업기술원 일대는 터가 넓고 웅장하다. 사실 전남도는 지난 10년 동안 국내용의 농업박람회를 매년 개회했다.

 

이에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유기농산물의 60%를 생산하는 전남을 알리고,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 24개국 103개 업체와 국내의 300여개 기업과 관련 단체가 참가하는 국제농업박람회를 올해 처음으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박람회가 지방인 전남 나주에서 열리지만 농산품과 농기계 전시, 국제교역, 농촌 어메니티(amenity)를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국제농업박람회라는 것이 대단한 점이다.

 

우리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바로 표를 사서 기업홍보관으로 향했다. 국내외 농업관련 기업의 생산품을 홍보하고 판매, 상담하는 곳으로 국내기업은 생산물 소개와 판매에 바빴고, 지자체들은 특산품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모습이 열정적이었다.

 

나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유럽 등지에서 온 외국기업의 커피, 치즈, 와인, 소스, 농산물 가공기계 등을 유심히 보았다. 그중에 일본의 무 세정기, 청주와 녹차를 자세히 보았고, 동유럽 국가들의 치즈와 초콜릿 제품도 시식을 해가며 살펴보았다.

 

중남미의 건과와 와인, 중국의 농산물 반가공품과 통조림, 서유럽국가의 발효식품, 인도네시아의 꿀, 필리핀의 전병과 과자, 아프리카의 커피, 남미의 녹차, 러시아의 술 등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간간히 시식도 하면서 ‘사업 아이템으로 뭐 좋은 것 없나’하면서 둘러보았다. 

 

이태리의 발효식품은 국내에 수입하면 판매가 될 것 같았다. 이어 농산물전시판매관으로 갔다. 2개 동에 200개 넘는 부스가 설치되어 농수축산물, 가공식품, 발효식품, 전통주 등을 판매전시하고 있었다. 난 고추, 마늘, 양파, 석류 등 원예작물 코너를 둘러 본 다음, 오리훈제와 돼지고기 등 축산물 부스를 살펴보았다.

 

중간 중간 시식도 하고 눈으로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이동을 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볼거리가 많아서 행복했다. 개막 당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무척 많았다. 이어서 김, 미역 등 수산물 코너와 내가 좋아하는 인삼, 홍삼, 산수유, 블루베리 등 건강식품 코너를 둘러보았다. 건강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시식용을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마시고 먹었다.

 

또 우리 자친(慈親)께서 좋아하시는 된장, 고추장, 젓갈 등 발효식품도 살폈다. 전라도 지역이라 그런지 처음 보는 젓갈이 상당히 많아서 짜고 매웠지만 일일이 맛을 보았다. 그리고 막걸리 등의 명품 토속주도 살펴보았다. 광양에서 나온 매실막걸리가 마음에 들어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톡 쏘는 막걸리 특유의 맛과 세콤함이 절묘했다.

 

이어 농기계전시판매관으로 이동하니 국내외 기업의 다양한 농기계가 아주 많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처음 보는 농자재 등이 많아서 주마간산으로 스치며 지나갔다. 다음은 큰 길을 건너 농업미래관과 생명농업관, 친환경축산관을 살펴보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약간씩 준비를 하고 있던 곳이라 전혀 새롭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더 하니 볼거리가 많았다. 생명농업관은 농업이 단순히 농산물을 키우는 산업이 아닌 국가안보와 환경,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공익적 가치를 지닌 산업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5m가 넘는 키다리 벼와 타임지가 최근에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 의료계가 권장하는 5대 성인병 예방식품과 음식, 바른 먹을거리 등이 사진과 함께 글로 설명되어 있다.

 

농업미래관에서는 버티컬 팜과 서클비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미래농업 상상이라는 주제영상을 360도 서클비전을 통해 전달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온실 환경을 직접 제어하는 유비쿼터스농업 온실자동화시스템이 직접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주어 무척 경이로웠다.

 

또한 시선을 모은 곳은 생명반도체로 불리는 종자들이다. 100여종이 전시되어있는데, 타조 알 보다 큰 세상에서 가장 큰 종자인 바다야자 종자와 0.5㎜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난의 종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골든씨드, 기능성 종자 등 미래에 도입될 새로운 종자가 관심을 끌었다.

 

아울러 백신과일, 우주농장캡슐, 바다 속 농장, 복합 과일나무도 만날 수 있어 신선했다. 또한 물고기와 식물을 동시에 기르는 아쿠아포닉스가 가정과 산업현장에서 활용되는 사례와 미래농업과 식량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식물공장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장미 등 야광 꽃과 무지개꽃 등 첨단기술로 새롭게 태어난 이색 꽃과 로봇 트랙터, 과채류 접목 로봇 등 첨단농업 기자재를 눈앞에서 보았다. 또 미래학자가 본 2050년의 미래 농업기술의 발전 시나리오를 가상의 현실로 만나게 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휴식공간인 디지털 가든에서는 퀴즈 형태로 세계 각국의 농작물 인증 제도를 알아보고, 에코 카페에서는 팜프렌지, 위팜 등 스마트폰 앱으로 농업관련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축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친환경축산관도 좋은 볼거리였다.
 
이어서 간 농업예술관에서는 온실 입구에 대형초가집 박 터널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장소다. 실내에는 상상의 나무인 모뉴트리를 중심으로 온대, 아열대, 열대과수와 고추, 가지 동산, 딸기공중재배, 토마토터널재배, 약초정원 등 다채로운 모양의 작물들이 있어 ‘예술이다’라는 말이 여러 번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져있다.

 

45kg의 초대형 호박, 뱀처럼 생긴 오이, 자두만한 만한 사과, 형형색색 누에고치, 10만개의 누에고치로 만든 누에 벽, 바나나와 망고, 파타야 등 열대 과일 등을 신비롭게 보았다. 이어지는 안전한 먹을거리의 대명사인 유기농산물과 함께하는 유기농업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여기에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한 박람회 주최 측의 준비도 대단해 보였다. 어르신과 어린이들은 우선 무료입장이 가능하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30여 가지 체험행사 가운데 지게 지고 망태를 메는 행사를 비롯하여 연못에서 잉어에게 젖병을 물려보는 재밋거리, 식용곤충 시식코너, 달걀에 예쁜 소망그리기, 손톱에 알록달록 봉숭아 물 들이기 등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운 프로그램이다.

 

고구마와 고추, 쌈 채소 등 농작물을 직접 수확하거나 토피어리 화분 만들기, 한지공예, 가죽체험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코너다. 또한 잔디운동장에서는 허수아비 만들기, 누룩 만들기, 스타킹을 이용한 천연방향제 만들기, 천연염색 체험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전남도립국악단 공연과 생명농업 창작마당극, 줄타기, 중국 기예단 공연, 라틴댄스 등 다양한 상설 공연행사도 준비 중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생명농업 그림그리기와 키즈짱 선발대회, 댄스페스티벌 등 경연대회도 멋진 이벤트인 것 같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가 세운 불회사에 가다

 


정말 대박이 날 것 같은 나주의 국제농업박람회장을 둘러 본 우리들은 차를 돌려 또 다른 볼거리인 ‘홍어의 거리’로 이동했다. 입구에서부터 곰삭은 홍어냄새가 영산강의 강바람과 만나 가슴 속까지 아련하게 취하게 한다.

 

우선 버스를 정차한 곳 앞에 있는 나주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東洋拓殖株式會社 文書庫)’를 잠시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반에 건축된 건물로 현재는 전체 건물 중에 일부인 문서고와 숙직실만이 남아 있다.

 

강을 끼고 있어 풍광이 좋고 붉은 벽돌의 건물도 멋스러워 오랫동안 개인별장으로 쓰이다가 최근 찻집으로 개조되어 영업하고 있는 곳이다. 일제가 토지를 수탈하기 위하여 만든 대표적인 기관인 동척이 100년 전에 10년 정도 쓴 건물치고는 오랫동안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현재 있는 다른 건물들과 큰 나무, 한옥 담장, 연못 등이 잘 어우러진 멋스런 곳이라 차를 한잔 마시면 천천히 둘러 볼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방문해도 좋을 것 같은 곳이다. 개별 관광객을 위해서는 민박도 한다고 한다.

 

이어 강변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황포돛배 선착장과 나란히 있는 등록문화재 제129호 ‘영산포 등대(榮山浦 燈臺)’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5년에 건립된 강에 있는 국내 유일의 등대로 쌀 수탈과 해산물 등의 해상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영산포 선창의 기능을 말해주는 주요한 산업시설물이다.

 

특이하게도 이 등대는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 수위 관측 기능도 겸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몸통에는 거푸집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등대로서는 이른 시기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별로 쓰임이 없지만, 원형을 보존하여 문화재로 관람이 가능한 시설로 되어 있어 내 외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100년 전 등대라고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 지어진 튼튼한 구조물이다.  

 

이어 홍어의 거리를 대충 살펴본 다음, 거리 안쪽에 있는 ‘영산포성당(榮山浦聖堂)’으로 갔다. 예전에 온 적이 있는 곳으로 나주 본당 5대 주임 박문규 신부가 1948년 설립한 공소에서부터 출발하는 곳이다.

 

현재의 본당 건물은 영산포가 발전하면서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1956년 완공한 것으로 운치 있고 기품이 있는 건축물로 영산포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발걸음을 하는 작지만 멋진 성당이다.

 

홍어의 거리를 대략 살펴본 우리들은 ‘나주객사’는 다들 둘러본 관계로, 나주에 가면 꼭 봐야할 볼거리 중에 하나인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사찰 중에 하나인 다도면 마산리 덕룡산에 있는 백제고찰 ‘불회사( 佛會寺)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장관인 불회사는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편백나무 숲이 아름답고, 특히 11월 중하순이면 근동에서 가장 멋지다는 명품 단풍을 보기위해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다.

 

불회사는 ‘불호사 중창급단청문(佛護寺 重刱及丹靑文)’의 기록에 따르면 384년(침류왕 1)에 인도에서 건너 온 고승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367년(근초고왕 22)에 희연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누가 절을 세웠건 분명한 것은 백제불교의 전래와 거의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사실이다.

 

2천년이 다 되어 가는 고찰임에도 불구하여 여러 번이 화재와 중창으로 지금은 예스러운 맛이 별로 없는 절이기는 하지만, 종이불인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과 입구의 아름다운 숲, 석장승 등이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백제의 역사 가운데 나주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땅이 기름진 평야지역에 농수산물의 생산량이 많고,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불교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이기에 백제의 혼과 정신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곳 나주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불회사는 분명 대단한 사찰이다.

 

숲이 좋아 나무 하나하나를 보면서 입구를 통과하다 보면 중요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커다란 석장승 한 쌍을 발견하게 된다. 장승을 보는 순간 환한 웃음이 나온다. 남도인의 멋진 미소와 해학이 깃들어있는 재미난 표정을 지닌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이 있어 남다르다.

 

창건초기부터 오랫동안 ‘불호사(佛護寺)’로 불리던 이곳은 1808년경에 ‘부처가 모인다’는 뜻의 불회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 만큼 부처님을 모시는 수도승들이 많이 모이는 참선방이었나 보다. 다시 주변을 살펴보면 너무 조용하고 나무도 많고 산세와 풍광도 좋은 곳이라 공부하고 참선하기에 멋진 절로 보인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처럼 신상은 없고 그림으로 그려진 사천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절의 중심에 가장 볼거리가 많은 보물 1310호 대웅전이 보인다. 현재의 대웅전은 1402년에 건립되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가구수법(架構手法)이 빼어난 건물이다. 그 안에는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등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특별한 볼거리 중에 하나인 석가모니불은 종이로 만든 것으로 매우 특이하다. 또한 그 문짝은 두터운 통판자로 짜서 창살무늬와 불상, 화조 등을 새긴 희귀한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전 당시 인민군들이 떼어갔다고 전한다.

 

여기에 괘불탱화, 나한전, 명부전, 칠성각의 칠성탱화, 산신탱화와 원진국사의 영정도 볼거리다. 한때는 고승 휴정(休靜)과 유정(惟政)의 영정도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당간지주 2기와 원진국사 부도도 있어 천천히 산책하듯 보며 거닐기 좋다.

 

나주 제일이며, 백제 고찰인 불회사를 차근차근 둘러보면서 지금은 비록 고풍스러운 옛 맛을 많이 잃은 절이지만, 백제인이 숨결과 혼이 서린 석장승, 석가모니불, 멋진 숲을 보기 위해 조만간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의 멋스러움과 나주의 아름다움을 재차 확인하게 위해 11월 중하순, 불회사 주변 덕룡산에 가을 단풍이 보기 좋게 들면 또 찾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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