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북촌과 삼청동을 걷다
보물창고 같은 정독도서관을 가다
지난 5월 중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별다방 정문을 집결지로 하여 ‘서울시 종로, 중구 걷기모임’의 회원들이 만나 한옥마을 북촌과 인사동의 뒤를 잇는 문화와 상업 거리인 삼청동을 걸었다.
집결지의 길 건너에 있는 종로경찰서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지, 외벽을 전체적으로 덮어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다방 옆에 있는 옛 참여연대가 있던 건물은 리폼공사를 거의 마치고 있는 상태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울러 다방 앞에 정독도서관 도서 반납함이 오늘 따라 크게 보이는 것을 보면 오랜만에 안국동에 온 것 같다.
골목 길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술 도매상인 ‘순흥상사’가 있다. 내 고향 영주시에 위치한 ‘소수서원’ 있는 순흥면은 남다른 문화의 고장인데, '이곳 주인이 혹시 영주사람이거나 순흥안씨가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며 지난다.
풍문여고 담장을 따라 길을 오르면 바로 왼쪽에 ‘아름다운 가게’ 본사 건물이다. 아름다운가게(Beautiful Store)는 원래 영국의 옥스팜을 본보기로 하여 2002년 출범한 비영리기구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사명은 대체 무역과 시민의 참여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그 수익금을 제3세계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한다. 낡거나 오래 된 물건을 사람들이 기증하면 다시 이 물건들을 되살려 시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자원의 순환 운동을 꾀하는 생태적, 친환경적 변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점이다
안국동 점은 현재 별다방이 있는 건물의 옆 칸에 있었는데, 2~3년 전 헌법재판소 옆에 있는 한옥을 개조하여 이전 운영 중에 있다.
이어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사이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의 중앙선원’이다. 불교의 선리(禪理)를 연구하기 위하여 세운 학원으로 일제강점기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총독부 관할 아래에 두었다.
이에 한국 불교의 일본 불교화에 항거하고 한국 불교 고유의 법통을 굳게 지켜 가기 위하여 1923년에 낙성된 선종의 중앙 기관이다. 이곳이 조계종의 뿌리가 되는 곳이라고 한다. 간혹 지나면서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조계종의 시작이 이곳에 있다니 놀라웠다.
이어 190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교회인 ‘안동교회’다. 예장통합측 장로교회로 교단에서 여성장로를 허용하기 이전에 이미 장로를 임명할 만큼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던 곳이다. 현재의 교회 입구에는 한옥으로 된 손님들을 위한 휴게실과 아담한 정원이 있어 편하게 방문이 가능한 곳이다.
안동교회 앞은 1890년경에 지어진 사적 438호인 ‘윤보선(尹潽善)전 대통령의 생가’다. 윤보선은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4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가 주도한 5.16쿠데타로 인하여 1962년 사임했다. 생가는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이어 주로 대학교재를 많이 만들어 파는 ‘도서출판 명문당’의 사옥이다. 안국동에 비싼 땅에 아직도 허름한 건물로 출판사를 하고 있는 주인의 안목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영악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보통사람 같으면 출판사는 변두리로 옮기고 이곳에 카페나 갤러리 같은 것으로 수익사업을 할 것 같은데, 낡은 건물을 유지하면서 출판사로 쓰고 있는 것이 놀라운 곳이다.
이어 길을 왼쪽 골목으로 잡으면 ‘조선어학회 터’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국어학과 국어운동의 선구자 주시경 선생의 문하생 임경재, 최두선,이승규, 이규방, 권덕규, 장지영, 신명균 등 10여 명이 원서동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한 것을 시발점으로 한다. 이것이 한글학회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31년 학회의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고쳤고 사무실을 이곳 안국동에 두었었다. 광복 후인 1949년 '한글학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새문안교회 인근인 종로구 신문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어 길을 조금 더 가면 몇 년 전 ‘한국의 아름다운 간판 대상’을 받은 공예품 점 ‘은나무’다. 한글, 영어, 일본어로 된 글씨와 나무창문, 나무 지붕을 흉내 낸 모양, 낡은 자전거 등이 참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앞에는 최근에 문을 연 한옥의 ‘민들레 영토’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찾는 토론이 가능한 모임방을 빌려주는 찻집으로 나는 종로와 혜화동의 민들레영토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이곳에도 문을 열어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라리오 서울’ 갤러리다. 얼마 전 화가 강형구의 고흐의 얼굴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중학교 동창생인 친구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 아라리오에서 큐레이터를 하고 있는 곳이라 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그리고 가끔 중국만두를 먹기 위해 방문을 하는 곳으로 정말 한국어가 서툰 중국인 직원이 있어 약간은 곤란한 곳인 ‘천진포자’라고 하는 중국 만두집이다. 만두 맛은 일품이다. 그 앞의 ‘짬뽕 뉘우스’나 라면집, 분식집 등이 여러 곳이 있다. 여고가 두 곳이나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골목을 벗어 나오면 바로 왼쪽에 ‘선재아트센터’가 있다. 갤러리에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선재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아트센터라고 한다. 예전에 경주에 있는 힐튼호텔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아트센터를 둘러 본 적이 있어 친근하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옛 경기고등학교 터에 위치하고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경기고는 1900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중등학교로 현재는 강남으로 이전을 했다. 이곳에 정독도서관이 들어서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출입이 많은 편이다.
이 터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맹사성 대감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이 있던 곳이며, 조선 전기의 학자로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성삼문(成三問)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에는 총포를 제작하던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던 곳이다. 화기도감은 임진왜란 때 왜병의 조총에 대항하는 화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조총청을 개편한 것으로, 현자총(玄字銃), 백자총(百字銃), 삼안총(三眼銃), 소승자장가(小勝字粧家) 등을 제작했다.
정독도서관의 입구에는 우리의 교육사를 통사적으로 전시해 된 작은 박물관인 ‘서울교육사 자료관’이 있다. 삼국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학생들의 교과서와 복장, 교실 등의 모형을 만들어 두어 참고할 자료가 많은 곳이다.
정독도서관에는 칡넝쿨이 많았고, 곳곳에 벤치와 잔디밭, 나무가 좋았다. 연못가에 만들어진 원두막과 도서관 앞뒤의 나무로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기에도 적당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건물 뒤편에는 맹사성 선생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지역의 돌절구 등의 유적인 야외에 전시되어 있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도서관 건물을 등지고 좌측에는 원래 경복궁 옆에 있던 옛 기무사 터에 있었던 ‘종친부(宗親府)’가 있다. 1981년 이곳으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는 종친부는 조선 왕가의 족보와 왕의 영정을 받들고 왕가의 인사 문제와 다툼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다.
종친부 건물은 조선 시대 관아 건축에 해당한다. 원래 종친부가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 맞은편에 위치했던 것은 종신과 외척 및 부마, 인척, 그 외에 궁에서 일을 보는 상궁들만 건춘문으로 드나들게 했던 궁궐의 제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친부 옆에는 의빈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었다. 의빈이란 왕의 부마, 즉 왕비의 소생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의 남편 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 의빈들도 왕족 대우를 받았으므로 그들이 모여 의논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곳으로 종친부 옆에 의빈부가 마련되었었다
참으로 정독도서관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현재는 주로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으로 쓰이지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사자료관과 종친부, 맹사성 선생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사육신 중에 한 사람인 성삼문 선생의 집터, 화기도감, 경기고 등이 있었던 곳으로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회동 한옥에서 대통령이 나오다
정독도서관을 둘러 본 다음, 길을 왼편으로 잡는다. 도서관 정문 앞에도 한글로 표기된 콩다방이 보인다. 인사동과 북촌의 많은 커피숍은 아무래도 한국적인 정서가 강조되는 곳이라 그런지 서구의 브랜드로 한글 간판을 다는 곳이 많은 것 같다. 기분 좋은 일이다.
길을 좀 더 가면 내가 감기에 걸리면 단골로 가는 ‘이운경 내과의원’이 나온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주치의로 활동한 초로의 의사가 계시는 곳으로 보청기를 끼고 컴퓨터도 없이 환자기록카드에 볼펜으로 표기를 하여 검진하고 처방하는 곳이라 정감 있는 의원이다.
이내 사거리에서 길을 북쪽으로 잡으면 ‘북촌미술관’과 ‘가회동 주민센터’이다. 이곳은 구한말 천도교 제 3세 교주로 독립운동을 했던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옛 집터’이기도 하다. 손병희 선생은 기미년 독립선언 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교육 문화 사업에 힘쓴 분이다.
이곳 입구에는 조각가 ‘구본주’의 작품인 ‘비스킷 나눠먹기’가 설치되어 있다. 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조각은 실용주의 설치미술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도심 곳곳에 많이 설치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이어 길을 좀 더 오르면 궁중요리가 ‘황혜성’ 선생이 운영했던 요리점 ‘궁연’이다. 지금은 후손들이 경영을 한다고 하는데, 마당이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안쪽에 큰 나무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내 ‘작은 수제피자집’과 ‘커피점’이 있다. 북쪽에는 이런 작고 아름다운 가게들이 참 많다.
50~60년은 된 것 같은 철물점, 세탁소, 빵집, 커피숍, 구멍가게, 식당 등등. 참 정겹고 아늑하다. 그리고 길 건너에 ‘노틀담 몬테소리학교’가 보인다. 어린이 교육 자료로 몬테소리가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많은데 이곳에 학교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제부터는 ‘중앙고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매듭박물관’ ‘가회박물관’을 지나 중앙고에 닫는다. 이곳도 사실을 박물관 수준으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는 곳이다. 우선 본관 앞에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상’이 있고, 좌우측 건물도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교실이다.
이어 일요일에는 예배당으로 쓰이는 ‘강당’과 강당 옆에 있는 ‘3.1기념관’은 기미년 독립운동 당시에 학생들이 모여서 독립운동의 계획을 논의하던 곳이다. 그리고 다시 학교를 돌아서 정문 쪽으로 나오면 중앙학원의 설립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인촌의 백부인 ‘원파 김기중(圓坡 金祺中)’ 선생 동상이 있다.
그리고 중앙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주도를 했던 ‘6.10만세 기념비’도 보인다. 학생들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곳 인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말년에 인촌이 친일을 하여 욕을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중앙고를 나와 북촌 한옥골목으로 가는 길에 언덕 위에 있는 ‘김형태 가옥’을 잠시 바라본다. 고종황제의 비인 명성황후가 이 집터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현재의 집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서민한옥이지만, 명성황후가 태어난 사랑채는 100년이 넘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개방이 되지 않아 입장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어 안산에서 국회의원과 치과를 하고 있는 김영환 의원이 경영하는 국내 최초의 ‘한옥으로 된 믿음치과’가 보인다. 이곳에 한 번쯤은 치아 치료를 위해 방문해 보고 싶지만, 여력이 없어서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측 골목으로 길을 잡으면 2010년 월드컵 주체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저’가 보인다. 역시 성북동과 북촌에는 대사관저가 많은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사관저는 반가움이 넘친다. 이제부터 월드컵의 계절이니 말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기원한다.
그리고 한옥마을 골목길 뒤편 입구에 있는 가회동 ‘이준구 가옥’이다. 1930년대 지어진 한옥과 양옥의 중간정도가 되는 건축물로 유명한 곳이지만, 언덕 위에 있어 지붕만 보이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입구의 담쟁이 넝쿨이 좋아 사진을 한 장 찍어 둔다.
이어 한옥골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7년 대선 전에 이곳 한옥에서 살다가 당선되어 청와대로 이사를 갔다고 하니 터가 좋은 곳인가 보다. 나도 이곳에 작은 한옥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돈이 없어서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빈집이 많은지 문이 외부에서 굳게 닫힌 곳이 많다. 대략 20~30평 정도 되는 작은 한옥이 주류인 것 같은 곳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한옥골목은 사실 이곳을 주로 촬영지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자주 보던 집들이 많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이곳 한옥에서 한번 쯤 살고 싶다.
이어 길을 오르면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선생의 집터’가 나온다. 선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을 지낸 인물로 여러 벼슬을 거쳐 세종 때 이조판서로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였고 우의정에 올랐다. ‘태종실록’을 감수, 좌의정이 되고 ‘팔도지리지’를 찬진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황희(黃喜)와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고, 성품이 청백 검소하여 평소에도 남루한 행색으로 생활을 했으며,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밝아 향악(鄕樂)을 정리하고 악기도 만들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말년에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지은 학자이기도 하다.
맹사성 선생의 집터를 둘러본 다음, 일행은 ‘동양문화박물관’을 지나 삼청동으로 길을 잡는다. 삼청동 가는 길목에는 조선시대 궁중의 화과(花果)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인 ‘장원서(掌苑署)터’가 있다.
장원서는 전국의 과수원에 과수를 식재하거나 접목하여 그 수입을 대장에 기록하고 관리하는 관청이다. 특히 궁중의 정원 관리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실수의 개발과 식재에 신경을 많이 쓰던 관청으로 궁궐에 꽃과 과일을 공급하던 일을 주로 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제주도에 있던 감귤을 남해안 지역으로 이식하여 재배하는 기술연구는 물론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대한 공헌을 하여 오늘날 ‘원예연구소’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길을 좀 더 가면 우측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가 보인다. 인사동과 홍익대 인근에 레스토랑과 의자 갤러리를 경영하는 김명한 사장이 최근 북촌에 개업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김 사장의 안목이 돋보이는 가게로 내외부의 인테리어와 아웃테리어가 남다른 곳이다. 이곳도 내부 장식과 집기의 상당부분을 100~200년 전 이탈리아서 쓰던 식탁과 의자들로 치장한 것처럼 보인다.
생활사 박물관 같은 삼청동과 북촌
북촌을 대충 둘러본 다음, 삼청동으로 간다. 삼청동에서는 총리 공관을 비롯하여 많은 가게, 카페, 식당들이 즐비하다. 인사동 지역의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값이 싼 삼청동으로 상가와 카페들이 이동하고 있지만, 이곳도 현재는 너무 올라 있는 상태다.
우리들은 옷가게, 식당, 카페 등을 둘러보고서 식사를 하기 위해 ‘삼청칼국수’와 ‘삼청수제비’ 앞에서 갈등을 하다가 수제비 집으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막걸리는 한잔 하면서 수제비를 시켜먹었다. 나는 들깨수제비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멸치수제비를 먹는 것이 좋았을 것 같았다.
식사를 한 다음, MB정권의 인수위 사무실이 있던 ‘한국금융연수원’을 지나 늘 ‘모양이 아름다운 세탁소’라는 생각이 드는 멋진 세탁소도 지나 ‘갤러리 영’ 앞으로 간다. 생각해보니 삼청동에는 갤러리도 많은 것 같다. 인사동 보다 운치가 있는 것 같아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길가에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지청천(池靑天)장군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이다.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가였던 지 장군은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동아혈성동맹(東亞血成同盟)의 간부로서 각지의 항일단체를 규합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항일전을 수행하다가 광복 후 귀국, 대동청년단을 창설했다. 제헌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어 ‘서울 신포니에타’ ‘용수산’을 지나 ’삼청공원‘으로 간다. 도심에 있는 몇 안 되는 큰 공원이다. 나는 특히 개울이 흐르고 여름이면 아침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간혹 등목을 하는 곳이라 더 정겨운 느낌이 든다.
공원의 중간쯤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이곳은 소설가 ‘횡보 염상섭(廉想涉)선생의 집터와 동상’ 있는 곳이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 작품을 보여준 최초의 소설가가 분리되는 염 선생의 대표작 가운데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인 소설로 평가된다. 아시아자유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삼일문화상 등을 수상한 문호이다.
그의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돌아 ‘감사원’과 ‘베트남 대사관’, ‘북한대학원대학교’ 방향으로 나온다. 당초 북한대학원대학교과 ‘극동문제연구소’ 방향으로 들어가 골목 길 순례를 하려고 했지만, 길이 막혀있어 감사원 방향으로 나와 안국역 쪽으로 내려간다.
길을 가다보니 ‘안국선원’ 앞은 연등이 아주 많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는 관계로 곳곳에서 연등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안국선원 맞은편에는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이다. 아름다운재단은 건전한 기부 문화 조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재단법인체다.
시민운동으로 활발한 사회참여를 해왔던 ‘박원순 변호사’ 등이 중심이 되어 2000년 8월에 창립했다. 본격적인 나눔 문화의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곳이다. ‘희망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어 좋은 책을 많이 만드는 ‘도서출판 김영사’ ‘가회동 성당’ 등이 보인다. 길을 더 내려가다가 현대사옥 인근에 있는 ‘북촌문화센터’로 간다. 북촌 한옥의 기본적인 유형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문화센터는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 양반가옥을 아름답게 복원해 놓은 곳이다.
이어 ‘현대건설빌딩’이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서민 의료기관인 ‘제생원(濟生院)’이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인 1397년(태조 6)에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고려의 ‘제위보’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주로 빈민, 행려의 치료와 미아 보호를 맡아보았다. 60년 넘게 운영되어 오던 제생원은 1460년(세조 6) ‘혜민서(惠民署)’에 병합되었다.
또한 이곳은 조선말 고종의 사촌인 ‘이재원(李載元)의 저택인 계동궁(桂洞宮)’이 있던 터이다. 계동궁인 한성부 북부 관광방(觀光坊) 계동에 있었으므로 계동궁이라 하였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강요로 창덕궁에서 경우궁(景祐宮)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그곳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김옥균이 이끄는 개화당에 의해 참살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고종은 창덕궁으로 환궁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경우궁보다 협소한 계동궁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개화당은 그들의 배후세력인 일본과 적대 관계에 있던 청나라의 군대가 공격해 오더라도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계동궁에서 신정권의 기초를 가다듬은 후 창덕궁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고종은 그 후 곧 환궁하였지만 창덕궁에서도 가장 협소한 관물헌에 머물게 된다. 힘없이 가련한 군주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는 현장이다.
이어 한국 최고의 건축가 중에 한 사람인 김수근 선생의 ‘공간’ 사옥이다. 유리벽과 담쟁이 넝쿨이 너무 인상적인 곳이다. 간혹 이곳을 지나는 일본인들이 “공간이 뭐지”라고 물어오는 경우 나는 ‘한국의 유명한 건축가의 멋진 공간으로 건축가 사무실’이라고 말해주는데 사실 나도 이런 곳에 한번 근무해 보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그 옆, 그러니까 바로 현대사옥의 바로 우측에는 작은 천문대가 보인다. 현재 뒤편의 ‘현대원서공원’ 앞의 ‘관상감(觀象監)터’를 알리는 작은 표식이 있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천문, 지리학, 역수(曆數:책력),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었던 관상감이 있던 곳이다.
예전에 현대사옥 앞에 있는 천문대를 보고서 고 정주영 회장인 주술적인 의미에서 세워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은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니 나 자신의 무식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원서공원 앞에는 또 다른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바로 ‘사도시(司導寺)터’를 알리는 돌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쌀과 곡식 및 장(醬) 등의 물건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이어 창덕궁 사이의 골목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왼쪽에 2007년 10월에 조성된 ‘원불교의 은덕문화원’이 보인다. 북촌 한옥마을에 원불교 문화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는 은덕문화원은 작고한 원불교 종로교당 교도 전은덕 씨가 교단에 기증한 건물을 2년여 간 개축공사 끝에 완공한 것으로 조선시대 궁성을 수비하던 ‘금위영 서영’이 있던 자리이다.
500평이 넘는 넓은 대지에 대각전, 세심당, 사은당, 인화당 등 고풍스런 한옥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다. 은덕문화원은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아카데미 운동을 비롯해 각종 문화강좌와 세미나, 음악회와 전시회 등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원불교 중앙총부가 전북 익산에 있기 때문에 은덕문화원은 서울에서 교단을 대표하는 영빈관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은덕문화원을 나오면 바로 좌측에 ‘미얀마의 삶 그리고 마음’을 전시하고 있는 ‘한국불교미술관’이다. 참 북촌에는 미술관, 박물관이 많은 것 같다. 이곳은 나중에 한번 더 방문을 하기로 하고 길을 더 나아가 ‘궁중음식연구원 및 전수관’으로 간다.
궁중요리가 ‘황혜성’ 선생이 운영했던 곳으로 지금은 그 후손과 후학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다. 다음은 ‘원서동 백홍범 가옥’이다. 창덕궁 바로 옆에 있어 궁궐을 바라보면서 생활이 가능한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은 곳이다.
그리고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많이 돕는 ‘한국국제봉사기구(Korea International Volunteer Organization)’의 서울 사무소가 보인다. 작은 단독 주택을 그대로 사무실로 쓰는 곳으로 국가, 종교, 이념, 인종의 벽을 넘어 희망찬 인류의 미래를 창조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1988년 3월 하성수가 라틴아메리카의 볼리비아 원주민을 대상으로 의료봉사와 고아구원 활동을 하면서 세운 ‘국제아시노스회(ASINOS:남미고아후원회)’가 그 시초이다. 1989년 8월 11명의 자원봉사자가 볼리비아 현지에서 정착촌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국제아시노스회 한국후원회가 발족하여 1993년 8월 2일 볼리비아에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였다. 주요 활동은 경제협력, 영농기술 보급, 위생 의료봉사, 구호, 사회복지, 환경보호, 교육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북촌과 삼청동을 둘러보면서 나는 이곳이 조선 조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를 잇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산재한 유적과 유물은 물론 현재까지 거주민과 관광객들이 오가는 ‘생활사 박물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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