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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 로컬 브랜드 트러스트/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

푸른하늘김 2022. 7. 11. 09:46

이런 상상, 로컬 브랜드 트러스트/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

70년 서상양조장은 문화자산이자 브랜드/지역자본과 시민사회가 나서 보존한다면

 

 

 

 

지난 4일 경남도민일보에 '탕웨이도 반한 그 술이제는'이란 기사가 실렸다. 남해 서면 서상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를 영화 촬영차 남해에 머물고 있던 탕웨이가 맛을 보고 무척 좋아했는데, 그 양조장이 지금은 문을 닫았다는 내용이었다. 양조장을 경영하던 노부부의 건강이 악화된 게 원인이었다. 양조장 문이 닫힌 후 여러 사람이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노부부는 거절했다. 남한테 맡길 일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는 의지를 보인다고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란다.

 

 

 

탕웨이는 서상막걸리를 어떻게 알고 마셨을까? 추측해 보면, 촬영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는 로드헌터가 이 술을 발견하고 소개한 핵심 인물일 것이다. 그에게 촬영지인 아난티 남해에서 불과 6거리에 위치한 서상양조장은 동료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숨은 보물 아니었을까? 서상양조장은 195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 7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업을 이어왔다. 해방 직후부터 40여 년 동안 전통주가 줄곧 탄압 받던 때에도 서상양조장은 그 자리를 지켰다. 이런 역사적 내공이 로드헌터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이 정도면 서상양조장은 단순 사업자가 아니라 공공의 가치가 충분한 지역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다. 그런데 이 브랜드가 현재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관하는 '백년가게'라는 제도가 있다. 고유한 사업을 30년 이상 계승 발전시킨 사례를 신청 받아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 백년가게에 선정되면 인증현판을 제공 받고, 시설 개선과 홍보, 그리고 판로개척 등을 지원 받을 수 있다. 겨우 30년 기준으로 '백년'이란 타이틀을 주는 이유는 우리도 백년 넘게 지속되는 동네가게 브랜드를 키우자는 뜻일 테다.

 

 

그런데 서상양조장은 이 제도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신청하려면 누군가가 서류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경남 전역에 백년가게가 103개사가 있다. 비교적 젊은 후계자(보통은 창업자의 아들)가 행정업무를 도맡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서상양조장처럼 후계 여부가 불투명한 브랜드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까? 다른 방도는 정녕 없는 것일까?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라는 제도를 참고해보자. 이 제도는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과 문화 자산을 민간의 모금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영구히 보존, 관리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설립자인 로버트 헌터 변호사 등은 19세기 말 산업혁명이 고도화되면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너무 쉽게 공장부지로 팔려나가는 현실을 주목했다. 정부가 미적거린다면 민간이 앞장서서 지켜야 할 자원들을 지키자고 외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1만 명을 넘긴 회원수는 2020595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현재 영국 토지의 1.5%, 해안선의 17%를 소유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로컬 브랜드 트러스트'를 상상해보자. 서상양조장처럼 후계자를 찾기 어려운 브랜드를 정당한 가격에 사들이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전도유망한 청년사업가에게 부여하면 어떨까? 지역의 문화자산은 로컬 브랜드로 존속해서 좋고, 청년 사업가는 양질의 기회를 얻어서 좋고. 내셔널 트러스트처럼, 지자체와 정부를 기대하지 말고 뜻있는 민간이 먼저 움직여보자. 지역자본과 시민사회가 손잡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