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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천년고찰 명봉사.

푸른하늘김 2022. 7. 11. 08:53

 

경북 예천군 천년고찰 명봉사.

 

 

 

명봉사는 예천읍에서 23km로 약 30여 분 소요된다. 단양방면 지방도 927호선을 타고 달리다 양수발전소 송월호(하부댐) 사곡교차로에서 좌측 지방도 901호선(석항명봉로)으로 접어들면 명봉사 일주문 앞에 도착한다.

 

 

 

명봉사의 7월은 찌는 듯한 더위를 시원한 개울의 물과 맑은 자연의 산소가 막아준다. 절 입구의 숲과 계곡이 빼어나며 경내에는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등 큰 느티나무가 해를 가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한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 피서지, 산책로로 각광 받고 있다.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신라 말 875년(헌강왕 1)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창건됐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1662년(현종 3)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여러 스님들이 힘을 모아서 중건했다. 1668년에 다시 절이 전소돼 신익(信益) 행선(幸善) 스님 등이 시주를 얻어서 크게 중창했다. 이후 1807년(순조 7)에도 한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버렸다. 그 뒤 1955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호인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인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鳴鳳寺文宗大王胎室碑)가 있다.

 

이 중 자적선사탑비는 941년(태조 24) 자적의 인격과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현재 귀부의 머리는 떨어져 없어졌고, 비신(碑身)은 높이 1.9m, 두께 0.2m로 많이 마멸됐다.

 

이 비의 음명(陰銘)은 1976년에 판독되었는데, 신라에서 고려로 접어드는 당시의 과도기적 이두문자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내용은 당시 중앙 관서인 도평성(都評省)에서 승도(僧徒)들에게 내린 글로, 행정적인 양식을 갖춘 문서이다.

 

문종대왕태실비는 원래 명봉사 법당 뒤의 산봉우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발굴하여 현재 비신만을 이 절 경내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명봉사의 부속 암자로는 고려 태조 때 자적이 창건한 내원암(內院庵)이 있다. 이 암자도 명봉사와 함께 6·25전쟁 때 전소 됐다가 1988년에 명봉사 주지 성면(性面)이 중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