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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실업대란

푸른하늘김 2020. 3. 22. 08:42

고백한다. 이쪽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위기를 보았지만, 이번 위기가 가장 두렵다.

 

3월 초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고용과 노동소득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듯 해서, 직원들을 모아서 고용추정모델을 엡데이트했다. 그때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천만명 실업 정도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개발도상국은 사실 경기가 나빠져도 고용이 줄지는 않는다. 실업보험이나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실업은 곧 죽임이기 때문에 좌판이라고 열어서 살 궁리를 한다. 통계의 허점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결과적으로 천만명 정도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대형사고'다.

 

그런데 매일 달라졌다. 일주일에 걸친 추정작업을 마치고 나니 실업예상치는 5백만명이 늘어나 있었다. 3월 10일 경이었다. 혹시 몰라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넣었다. 2500 만명 정도. 지난 2008년 경제위기 때 생긴 실업자 숫자가 2200만이었으니, 우린 '최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주에 발표할 때에는 이미 2500만명도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수치가 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가 반협박식으로 얘기하는 실업율 20% 예측이 맞다면, 그것만으로도 150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생긴다는 얘기다. 유럽은 조만간 실업율이 적어도 2배, 많게는 3배 가까이 늘어날 각오를 해야 한다. 어제도 다시 추정모델을 엡데이트했다. 결과가 너무 나쁘다.

 

유럽은 전쟁 중이다. 정치인의 낡은 수법이 아니라, 일상이 전시상황에 준한다. 경제는 이미 무너졌고, 쉬이 돌아오지 못한다. 기업도 일하는 사람도 휘청이니, 지금은 국가의 시간이다. 정부의 시간이다. 오늘 독일은 수십년 동안 금과옥조처럼 지키던 재정정책 원칙은 집어던지고, 내가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규모의 정부빚을 내겠다고 했다. 믿지 못해 숫자를 몇번이고 봤다. 다른 나라의 경제 위기 때는 재정 문제에 그토록 혹독했던 나라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제 홀로 살겠다고 유럽연합도 뒷전에 두고 체면이고 원칙이고 다 버렸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케인즈가 전쟁통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장기적으로는"를 읊어대는 경제학이나 경제정책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지, 나는 이제서야 이해한다. "경제학자들이 장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 폭풍우 몰아치는 상황에서 폭풍우는 결국 그칠 것이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고요해 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탄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했는데, 이제는 가슴을 때린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를 안다. 이제서야.

 

임대료도 임금도 나라가 내고, 해고도 못하게 하고, 돈을 살포하고 하늘에서 뿌린다고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언제 빠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온전히 살아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능한 잘 버티어서 폭풍우를 벗어나면, 뒷감당은 그때 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선장의 시간이다. 구명조끼를 꼭 하시고 객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면서 협조를 부탁하는 것만이 선장의 역할이 아니다.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쳤으니 선장이 책임지고 월급을 30% 반납하겠다고 선내 방송을 할 일도 아니다. 조타수를 꼭 잡고 가야 한다. 폭풍우를 돌파하는데 기름을 아낄 것인가. 파도에 부딪혀 부서질 갑판을 걱정할 것인가. 승객은 선장을 바라보는데 선장은 승객만 바로보고 있으면, 배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고백한다. 나는 다음 주가 무섭다..

 

 

 

이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