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칼럼
‘소는 살고 말은 죽는(牛生馬死)’ 이치에 대해/조용헌
옛날 장마철이면 낙동강에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 불어난 강물에 별의별 것이 다 떠내려간다. 농짝도 솥단지도 떠내려가고, 돼지·염소와 같은 가축도 떠내려간다. 개중에는 덩치가 큰 짐승인 소와 말도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강물에 떠내려갈 때 말과 소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소는 네다리를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강물의 흐름에 자기 몸을 맡겨 둥둥 떠내려간다. 이에 반해 말은 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린다. 물론 살기 위해서다. 네다리를 죽기 살기로 휘저어대다 보면 결국 에너지를 다 써버려 탈진이 온다.
탈진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죽는다. 소는 둥둥 떠가니까 탈진이 없다. 떠내려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적당한 언덕을 만나면 살아나는 것이다. 소와 말은 이렇게 홍수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결과는 어떤가? 소는 살고 말은 돌아가신다. ‘우생마사(牛生馬死)’다. 나는 이 이치를 처음 접했을 때 많은 깨달음이 왔다. 나 자신이 말처럼 허우적거린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강물에 빠졌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엄청난 긴장이 오고,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앞뒤와 좌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팔과 다리를 휘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대목에서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휘젓지 않아도 되었는데, 너무 휘저었다는 회한(悔恨)이 밀려온다. 어찌 나만 그러겠는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월급쟁이하던 주변 친구들이 3~4년 전부터 퇴직을 했다. 20~30년 조직 안에서만 있다가 밖에 나오면 아무것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월급쟁이라는 것은 노비생활이다.
조선시대 노비도 요즘 식으로 보면 월급쟁이였다. 노비생활을 하는 한 굶어 죽지는 않았다고 본다. 공노비(公奴婢)냐, 사노비(私奴婢)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퇴직을 하고 밖에 나오면 길바닥에 내던져진다는 느낌을 갖는다. 뭘 먹고살아야 할지. 그 심정이 절박하다. 특별한 재주도 없다. 닭장 안에서 주는 사료만 먹던 닭이 닭장 밖을 나와서 이제는 야생의 꿩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닭장 밖을 나올 땐 절박하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른다. 이모작을 하려고 성급하게 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무슨 일을 벌인다. 자기 나름대로는 투자나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실행에 옮긴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70%가 실패한다. 퇴직금을 적게는 1억원부터 4억~5억원까지 까먹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월급쟁이하던 친구들에게 “어이! 1~2년은 그냥 백수로 놀아보지 그래?” 하고 권유를 많이 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빈둥빈둥 노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이때 하는 이야기가 우생마사의 우화이다.
노비생활을 오래 하면 인이 박인다. 이걸 불가에서는 ‘습(習)이 든다’고 표현한다. 항상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강박증에 휩싸이는 게 노비의 숙명이다. 노비가 어떻게 한가하게 놀 수 있겠는가. 한가하게 노는 것도 보통 내공이 아니다. 고도의 내공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그냥 습득되는 경지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20~30년 하면 그게 어떤 직장이었든지간에 ‘내가 노비로 살았다’는 자학(自虐)을 좀 해야 한다. 자학을 해야 반성이 오고, 여백이 생긴다. 내가 세상에 대해 뭘 모르니까 잠시 한숨 돌리고,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세상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의 명산대천을 유람해야 한다. 유람도 코스가 있다. 10대 명산, 36 명당, 72 문화유적지가 있다. 이곳을 돌아보아야 한다. 서울 근교의 관악산이나 청계산에 김밥을 싸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것은 유람이 아니다. 최소한 한달 정도는 집을 나와서 국내의 명산·명당·유적지를 돌아다녀봐야 한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가 한 보름 좀 쉬었다가 다시 한달을 돌아다니고. 여유가 있으면 세계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내가 노비로 살다가 노비해방을 맞는다면 우선 남미로 가보겠다. 남미는 물가가 싸고, 덜 개발돼 원시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남아 있는 데다 대륙이 넓어서 돌아다닐 만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 못사는 동네가 많으니까 약아빠진 유럽보다는 인심도 좋을 것이다. 월급쟁이 그만뒀다고 인생을 비관하는 친구들이여! 궁즉통(窮則通)이요, 우생마사의 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