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곡괭이
군함도4
시 이청리
나라 찾자는 일념으로 청춘이 가는 줄 몰랐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이 몸 하나에
풀리지 않는 가난 하나였는데
닥치는 대로 몸을 던져 일하는 것이 천직인 듯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가슴 깊이 박혀 있던 가난의 말뚝을 뽑아주겠다
밀어 넣고 가난의 말뚝을 죽음으로 바꿔 끼워
땅 속을 떠받치게 하네
허허 지옥불이 이보다 더 뜨거울까
등골이 빠져 나가는 우리 몸속은
공동진 막장 속처럼 휑하고 세상도 휑하고
가슴에 가라앉은 적이 없는 나라를
찾자는 일념마저 다 빠져 나갔는지 휑하네
눈에 들어 오는 것이란 탄가루 뿐이지만
텅 빈 우리의 속을 가득 채워
좌우로도
한 치 흔들림 없이 자리를 잡아주는
독립투사들이 있으니 움켜진
이 곡괭이가
언젠가는 나라를 찾는 무기가 아닌가
혼만 돌아가게 하는 군함도여
군함도5
시 이청리
좋은 세상이 땅에 묻혀 있었기에
이것을 캐내려고 끌고 왔나
그 좋은 세상이란 우리 꿈 밖에 있었구나
젊음을 배에 싣고 오던
이 현해탄 길을 가도 가도
죽음의 깊은 바닥에 내려 놓고 떠나고
다시 그 젊음을 실으러 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그 젊음을 담았던 자루만 덩그러니 남아 있구나
땅에 묻혀 있는 좋은 세상이
쪽빠리들이 조선반도를 강탈케 하는 일을 거들고 있으니
돌아오는 것은 굴종 뿐이로구나
털린 젊음을 조금이라도 회수 하고자 나서봐도
살아서 갱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 절대절명의 순간들 뿐이로다
살아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죄인이요
죽어서 이 군함도 묻혀 잊혀진 뒤
혼만 돌아가게 하는 군함도여
절망도 기웃거리지 않더이다
군함도6
시 이청리
벅찬 풍랑을 걷어내고자 부비는 곳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고작 몸 비비고 선 곳이 이곳이었다니
좌절도 더는 다른 곳으로 밀고 가지 않더이다
죽음으로 못을 박아두었는지
몸의 반은 세상에 딛고 또 반은 탄가루 속에 딛고
살아게 하는 날들이
물길 험한 눈보라처럼 펼쳐지고 있구나
제마다 지닌 가슴 쥐어뜯는 사연들 별무늬 만큼
많아 지워지지 않는 회한의 무늬는 피빛이다
쪽빠리 세상 망치로 두들겨도 열리지 않은
이 문 앞에서 조선들은 누더기 뒤집어 쓰고
살아가야 하는 노숙인들 아니냐
언제 이 문 망치로 깨부셔 열어 보나
이 지긋지긋한 탄을 캐내는 생 패대기 치고 싶어
부르르 움켜쥐면 절망이 다가와 내버려두라고
한마디 던지더이다
절망이 더는 우리 멱살을 잡기보다는
이미 죽음으로 못 박혀 있는
우리 생을 보더니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더이다
가족
군함도7
시이청리
참으로 생의 절반을
가슴에서 불던 광풍이 다 할퀴고 갔는지 잠잠합니다
꼭 버티어 내지 못하고 떠날 것 같은 심정으로 뒹굴던
홀홀단신이던 이 몸에 가족이 생겨나
아이들의 머리 위에 뜬
이 북두칠성이 있는 한
잠시 잠깐도 멈춰 설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지난 날에는 가슴에 불던 그 광풍이 이끄는 대로
피투성인 채로 그 세상 땅 끝까지 달려가서
풀리지 않는 해답을 간절히 얻고자 했으나
거기에서 이렇다할만한 해답은 끝내 듣지 못하고
결국은 가족이 풀리지 않던 그 해답을 주었습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치열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업보의 억센 줄에 묶여 몸부침치던 모든 날들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던 것도 가족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생의 이 짙은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길이이라는 것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 군함도 지열의 배를 타고 떠나는 길에서
유서 한 줄을 남겨둡니다
한 물간 생들
군함도8
시 이청리
조선 사람들이 캐내다 만 탄들만
덩그라니 남아 애처롭네
한 물간 조선인들을 찾아 올 사람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속뒤집은
소리만 늘어놓은 쪽빠리들이네
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한 물간 생들이라하네
이렇게 탄을 캐어내랴
뼈 끝에서 핏방울 뽑아내랴
조선인 사는 게 다 천대가 생의 전부이니
생목숨 칠성 널에 실어 보내는 숫자들이 얼마이던가
가슴 찢으며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쪽빠리 하늘을
물들인 세월을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네
탈출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것이 팔자려니 하고
한물간 조선인을 탄가루가
애워 감싸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네
세상은 쪽빠리들의 쪽으로 흘러 가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이까짓 탄을 캐지 않아도 되는 것을
끌려 와 땅 속에 매장 되듯이 묻혀 저승 문까지
파고 들어가게 하네
#이청리시인의
#연작시집군함도시집